ARTBASE김지영 & 김덕한 Glowing Overlaid Hour

김지영 & 김덕한 Glowing Overlaid Hour

2023년 9월 1일~10월 31일

ARTBASE 26SQM

“용감하면서도 취약한 수직선”¹이 ‘추상적’이 되기까지

김선옥

P1의 삼면에 ⟨붉은 시간을 위한 드로잉⟩(2020–2022)이 연쇄적으로, 그러나 동일하지 않은 단위로 배치되어 있다. 일정한 질서나 규칙을 따르지 않는 프레임에서 대상은 정교하게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전하면서도 다르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김지영의 화법은 반복과 치환의 몽타주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를 다시 감각하도록 만든다. ⟨붉은 시간을 위한 드로잉⟩(2020–2022)은 작가가 대상과 거리두기를 훈련하고 실험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이 연작에서 대상의 윤곽선을 의도적으로 제거하여 형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혹은 이와 반대로 촛불의 심지와 번지는 빛의 형체를 빠르게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하여 대상에 다다르는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대상과 거리두기에 관한 작가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달라진 기점은 ⟨붉은 시간⟩(2020–2022)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직전의 작업인 ⟨이 짙은 어둠을 보라⟩(2019)는 서로 맞잡은 두 손의 모습을 초를 사용하여 구현한 구상 조각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리고, ⟨붉은 시간⟩(2020–2022)부터 유화를 매체로 선택하면서 작가의 작업은 점차 ‘추상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추상이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탈피하는 형식이라면, 김지영의 회화는 완전한 추상 형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때로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추상적’ 그림은 언제나 대상을 재현하는 행위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촛불의 모습이 기록된 표면에서 촛불의 심지와 광원은 다양한 밀도와 농도로 때로는 선명하고, 때로는 희미하게 드러난다. 이제 작가가 그린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묻기보다, 그 이미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때이다.

          P1을 가득 채웠던 다양한 온도의 촛불은 P2에서 불꽃이 열기의 정점에 도달하려는 의지로 빛을 발하는 절정을 향한다. P2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세 점의 ⟨붉은 시간⟩(2022)은 형식적으로 추상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시각적 경험의 시간을 유예시킨다. 붉은 색채로 균질하게 덮인 평면에서 우리는 길게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색은 그 자체로 형상을 읽는데 선과 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세 점의 ⟨붉은 시간⟩(2022)이 보여주는 빛의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부분, 그리고 공간 안쪽에 위치한 ⟨붉은 시간⟩(2022) 속 어슴푸레한 빛의 번짐은 초가 연소하는 동안 작가가 부단히 목격했을 장면이다. 색의 농도에 따라 섬세하게 변화하는 그림을 천천히 응시한 끝에서, 비로소 우리도 작가의 눈에 담겼던 그 빛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다.

          ⟨붉은 시간⟩(2022)은 단지 촛불이 빛을 내는 순간만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일출의 눈부신 빛과 일몰의 어스름한 노을빛, 그리고 그 빛의 잔상을 머금고 있는 지평선의 바다를 닮았다. 2014년 4월 이후, 바다는 여전히 먹먹하고, 일렁이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리고, 지금껏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브레히트(B. Brecht)는 급류하는 강의 폭력성에 대해서만 우리가 알고 있을 뿐, 그 강을 가두고 있는 둑의 폭력성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지영이 지속해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회적 재난의 묘사가 아니다. 그것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세계의 폭력성이며,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한국에서 촛불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저항의 움직임, 그리고 추모와 애도의 상징이 되었다. 초의 몸이 다 타올라 눅진한 촛농으로 흘러내려 차갑게 굳을 때까지 김지영은 촛불의 변화를 관찰하고 또 빛을 감각하면서 매 순간의 장면을 묵묵히 기록했을 것이다. 소멸하기 직전의 촛불의 한시적 이미지는 작가의 손끝에서 그렇게 영속한다.

          “바람이 불면 불꽃은 방해받지만 다시 일어선다. 어떤 상승력이 그것의 위신을 다시 회복시켜 준다. […] 불꽃은 생명이 살고 있는 수직성이다.²”

          김지영은 초의 심지가 다 타오를 때까지 빛을 내는 시간을 개인에게 주어진 생애로 빗대어서 이야기했다. 불꽃이 높이 타오르는 생명력은 개인이 자신의 일상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강한 의지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는 캔버스 표면에서 대상이 혹여 지나치게 가볍거나 매끈하게 보일 수 있는 질감을 경계하며 붓을 든 손의 힘을 끊임없이 통제한다. 물감이 화면에 안착하는 매 순간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굳건한 믿음으로 대면한다. 촛불의 심지는 “용감하면서도 취약한 수직선”이다.

          작가는 ⟨파랑 연작⟩(2016–2018)을 완성했던 어느 봄날쯤에, 시간이 더 흐른 후 파란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세월호를 그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2022년 가을의 문턱에서, 붉은색의 그림을 마주하고 서서 그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의 온도를 떠올려본다. 가을 하늘이 유독 아름다운 까닭은 빛의 산란(散亂) 때문이라고 한다. 파란빛의 짧은 파장은 진동하는 횟수가 많기 때문에 대기층을 지날 때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가을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이 현상을 선명하게 보이게 만들어서 높고 푸른 하늘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산란하는 숨결⟫은 작은 불이 빛이 되고, 그 빛이 반사되며 흩어지는 순간처럼, 생동하는 모든 존재가 마땅히 숨을 쉬며 빛나야 할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진동하는 움직임이 더 많아질수록, 그것은 더 빛날 것이다.

¹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김웅권 역, 東文選, 2008, 81쪽.

²Ibid.


Abstraction of “Robust but yet fragile verticality”¹

KIM Seonok

Drawing for Glowing Hour (2020–2022) are arranged on the three walls of P1 as a series, but not in the same measure. Not following a persistent order or rules, the story is told in a composition where the subject may or may not be clearly evident. Keem Jiyoung’s way of painting, which delivers the story in a ‘same but different’ way, (re)composes the image through a montage process of repetition and substitution, allowing us to sense the world that’s familiar to us again. Drawing for Glowing Hour (2020–2022) is more like a process through which the artist trains herself and experiments with distancing from her subject. She does not expose the form by intentionally removing the outline of the subject or, on the other hand, portray the form of the candle wick and the spreading light in an obvious way so as to control the speed in which the audience arrives at the subject.

          The artist’s approach to the distance between herself and her subject made a radical turn since Glowing Hour (2020–2022). Keem’s preceding series of work, Look at This Unbearable Darkness (2019) was a figurative sculpture which rendered pairs of praying hands in candle wax. Choosing to work with oil paint starting with Glowing Hour (2020–2022), the artist’s work began to demonstrate gradual transformations to ‘abstraction’. However, Keem’s paintings aren’t completely abstract if abstract signifies forms that escape the concrete reproduction of real world. This is because Keem’s ‘abstract’ paintings, which at times do not seem to point at anything specific, always begin with the act of representing the subject. On the surface of the works that record the ever–changing candle flame, the wick and luminous source of the candle shows itself clearly at times while dimly at other times, by capturing different degrees of density and saturation. Now, it’s no longer meaningful to ask what Keem’s image signifies; rather, it’s more significant to closely examine what that image (was) is doing.

          P1 brims over with the candle lights of different temperatures, while in P2, the flames climax, as if with the will to arrive at the highest point of heat. The three Glowing Hour (2022) paintings that greet the visitors as soon as they step in P2 near abstraction in terms of form, delaying the time of visual experience. The viewer must inevitably rest their gaze for a long time on the flat surface that’s evenly coated in red. It takes more time for color, in comparison to lines and planes, to be read as a form itself. The most intense and vivid part of light in the three paintings of Glowing Hour (2022) and the spreading of faint light in Glowing Hour (2022) located inside the space are scenes that the artist must have witnessed constantly while the candles burned. After slowly gazing at the painting that changes delicately according to the concentration of the colors, only then can we follow the movement of the light that was contained in the artist’s gaze.

          Glowing Hour (2022) does not only remind the viewer of the radiating flame of the candle. It resembles the dazzling light of the sunrise, the dusky sunset, and the horizon of the sea that captures the afterimage of this light. Since April 2014, the sea is still the subject of a deafening, swaying fear. And, nothing has changed so far.

          Bertolt Brecht said “The river that everything drags is known as violent, but nobody calls violent the margins that arrest him.” What Keem Jiyoung continuously explores in her work is not portrayals of social disasters; rather, it is the violence of the world which makes such disasters to inevitably happen, and social structural problems directly affecting the life of the individuals. In Korea, the candle light has become a symbol of resistance that does not conform to reality, and of remembrance and mourning. Keem would have silently recorded every single passing second, observing the changes in the candle and sensing the light until the body of the candle burned and soft and sticky wax dripping flowed down as it hardened cold. The temporary image of the candle on the verge of extinguishing lives on eternally at the ends of the artist’s fingertips.

          “One puff can disturb the flame but the flame restores itself. An ascensional force restores its prestige. […] The flame is verticality of life.²”

          Keem draws a metaphor between the lifetime given to an individual and the duration of a candle emitting light by burning itself up entirely. The vitality in the verticality of the burning flame is tantamount to an individual’s strong will to continue on their daily life. Keem constantly controls the power of her hands holding the brush, cautious of textures that can make the subject look overtly light or smooth on the surface of her canvas. She confronts every moment the paint settles on the surface carefully, but in firm faith. The wick of the candle is a “robust but yet fragile verticality”.

          One spring day when Keem completed her Blue Series (2016–2018), she mentioned that later on in the future, she would portray Sewol ferry in a color that is not blue. I think back on the intensity of our conversation held as we looked at her red paintings together at the beginning of fall 2022. It’s said that the autumn sky is particularly beautiful because of the scattering in light. Blue light scatters in all directions as it passes through the atmospheric layer, because it has one of the shortest, highest–energy wavelengths. The cold dry air of the fall makes this phenomenon clear and results in clear blue sky. Scattering Breath reminds the viewer that just as a small flame becomes light that reflects and scatters, all things living deserve to breathe and glow. And they will glow brighter with more scattering movement.

¹Gaston Bachelard, La flamme d’une chandelle, Paris: Le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61, p.52.

²Ibid.



텅빈 충만 : 한국미술의 물성과 정신성

물성-시각적 촉감 

 

김덕한은 한국의 오랜 전통 도료인 옻칠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완성한다. 

매우 장식적인 공예품의 주재료로 쓰였던 옻칠을 현대미술의 전면적인 물성을 치환시켜내는 그의 작업은 어느 누구의 작업 못지않게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중첩 되어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은 지문이 닳아 없어질 만큼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다. 

옻칠은 칠하고 건조되는 과정이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그는 한가지 색을 바르고 건조되길 기다려 사포질을 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칠하고 건조되면 사포질을 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반복의 과정은 여느 단색조 회화 작가들과 같다. 공통적이다. 그런데 그의 작업의 재미는 사포질에 있다. 

무심하게 반복되는 사포 질에 자신의 몸무게를 실어 계속 반복하다보면 어느 덧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먼저 칠해진 색 들의 흔적이 스스로 드러난다. 

바로 그 자연스러움, 뜻하지 않게 뜻 밖의 색이 출현하는 그 순간을 그는 기다린다. 

게다가 가끔은 의도치 않았던 사포질의 완급이나 힘의 분배와 상관없이 스스로 지지체인 동시에 그림이 되는 우연하게 수줍은 듯 드러내는 작품의 결과를 그는 기다린다. 

끝임 없이 사포질을 하면서.

 [‘텅 빈 충만’ 전 서문 부분 발췌]

정 준 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