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Hyun Ju / Invisible Paradox
송현주 / 인비저블 패러독스
2022.7.2~7.31
ARTBASE 26SQM
기계는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군에 갔을 때 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크고 당당하던지 아무 말이 필요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문명의 힘을 잊곤 한다. 판타지적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힘을 우리는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힘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를 너무나 무시한 채, 이미지 속의 판타지를 진실인양 믿고 살아간다. 힘의 세계는 논리적이고도 정확하다. 내 작업은 예술에서의 경계 허물기이다. 사진 같기도 하고, 디자인 같기도 하며, 건축물에서의 설계도(청사진)같기도 하다. 회화에서 드러나는 어법은 서로간의 경계지점을 넘나드는 세상에 대한 관조이다. (작업 노트 중에서)
Machine has a formidable power. When I had been in the army, I marveled to see aircraft carrier named Kitty Hawk. Since its fairly large size and a dignified appearance were beyond description, I had attained a spiritual state of perfect selflessness. We are easy to forget the power of civilization without our knowledge. We think the power seen in the world of matrix is natural. However, the power in the real is indeed realistic and direct. On ignoring, we keep on living with trust that image in the fantasy is true. The world of power is logical and exact. I break down boundary of fine art in my work. It seems to be a photo, design or blue print of building. The Language which is revealed at the picture is meditation about real world frequently cross over the boundary of them.
송현주 Invisible Paradox
우리는 원본은 사라지고, 복제되고 재현된 것들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시뮬라시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전장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전쟁을 접할 수밖에 없다. CNN 혹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보는 아프간 전쟁은, 전쟁을 찍어 방송하는 사람들이 속한 사회의 입장과 힘을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과 달리 재구성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분쟁의 한가운데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런 감정들을 외면하고 그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분리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전쟁의 부산물인 전투기나 전쟁 암호, 전함 등을 주로 그리는 작가 송현주에게도 전쟁은 이미 영화 같은 픽션일 뿐이다. 아니 그에게는 전쟁이 놀이 문화 정도로 가벼워졌다.
송현주는 사진병으로 복무하던 군 시절,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그 규모와 당당함에 놀라 무아지경에 빠져들 정도였고, 그것은 비행기 프라모델 제작이나 RC 비행기를 조정하는 취미로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로까지 연결되었다. 물론 그 이전의 작품에서 비행기나 무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비행기 조정하는 그림을 그려 상을 받기도 했고,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 그린 그림도 비행기, 무기와 전함이었다. 그 항공모함이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것이 분명한데, 역설적이게도 작가에게는 경이로움의 존재, 기계문명 발달의 찬란한 산물 정도로 인식되었다. 사실 이것은 전쟁을 실재로 경험하지 못하고 매스미디어나 영화를 통해 전쟁을 접한 현대인들이 갖는 솔직한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전투기나 폭탄 등을 어둡고 칙칙한 색이 아닌 화사하고 밝은 색깔로 처리했고, 바탕에는 비즈를 첨가해 화사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투기 뒤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설계도면 같은 도형과 기호들은 이 전투 기계들의 복잡하지만 논리적이고 정확한 면을 자랑하는 것 같다. 또 프라 모델의 오브제나 라인 테이프들을 그림에 붙여 프라모델 만드는 취미를 연장시키기도 했다. 전쟁 문명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단한 역설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아이러니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대표작 중 비행기의 실루엣을 조금씩 어긋나게 여러 겹 겹쳐 그린 것이 있다. 의도적으로 흔들어 놓은 이 화면에는 정의는 힘에 의해 지배된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살상무기들은 조금이라도 목표 위치를 잘못 조준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이런 상황은 그의 흔들리는 그림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최근 들어 작가는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나 전쟁과 관련된 심리적인 이야기들을 작품 속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장면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실재로 있지 않았던 상황을 연출하여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 작전을 위한 말표판의 이미지를 도입하여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 그림에 담기도 하고,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화면을 그리기도 한다. 또 군용기에 가문의 문양, 부대마크, 출격횟수를 나타내는 폭탄그림에서부터 핀업걸이나 애인의 이름, 미키 마우스 등을 그려 넣는 노즈아트에 착안해 에로틱하면서도 고전적인 여인을 그림에 등장시킴으로써 1,2 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심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미지는 판타지이며 판타지의 설계는 나에게 창작의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송현주”
매스미디어나 영화를 통해 받아들여진 하나의 문명은 작가의 손에서 다시 새로운 판타지로 태어나게 됐다. 그의 그림을 통해 전쟁으로 대표되는 문명을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모순될지도 모르는…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인간의 한 문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역설이 숨어있는 것이다.
장유정(샘터 화랑 큐레이터)
프라모델 조형을 통해 본 현실과 놀이와의 관계
프랑스의 사회문화 이론가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 소사이어티>(구경거리의 사회)란 저서에서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한 속성을 갈파한 바 있다. 현대사회는 그 자체가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장과도 같아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픽션, 영화보다 더 극적인 반전, 잔혹극보다 더 살 떨리는 폭력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건들이 현실 속에서 어김없이 구현된다. 이런 현실은 그 자체로서 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가공된 형태로 제시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이 미디어다. 미디어가 적나라한 현실을 한편의 극적인 영화로,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로 가공하고 각색해서 개인에게 전송해주는 것이다. 미디어는 말하자면 현실을 가공하고 각색하며 나아가 현실을 생산하기조차 한다. 미디어가 현실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질시키고, 삶의 장을 구경거리의 사회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미디어와 개인의 상상력과의 공모에 의해 9.11 사태 당시의 건물 폭파 장면은 초현실주의적 버전으로 재해석되고, 정치인의 선거운동은 한편의 가슴 찡한 휴먼드라마 혹은 배반과 거짓화해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편의 흥미진진한 픽션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서 미디어는 제도의 이데올로기를 실행하고 유포시키는 도구로 나타나며, 이에 대해 개인은 다만 이를 전송 받아 내재화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쌍방통행식의 미디어 자체는 하나의 비전일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론 사실상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런 구경거리의 사회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전쟁이다. 그러나 그 전쟁 자체는 적나라한 현실로서 보다는 그저 한편의 영화 속에서 재현된 전쟁장면과 구별되지가 않는다. 적어도 개별주체 속에서의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무디어졌고, 나아가 아예 그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고 지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은 그 자체로서 보다는 제도와 미디어가 유포시킨 온갖 이데올로기에 의해 덧칠된 형태로서 제시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현실, 진정한 일상은 끝내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해법으로서 제안된 것이 낯설게 하기다. 공기보다 친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일상에 덧씌워진 이데올로기의 더께를 걷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낯설게 하기의 유력한 방법 중 하나가 놀이고 유희다. 전쟁을 가지고 놀며, 폭력과 더불어 유희하는 것이다. 그 자체가 비록 소박한 유아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만큼 순진하고 미미한 방법일 수는 있으나, 여하튼 이를 통해 일상에 잠재된 전쟁, 폭력, 살해, 린치의 실체를 반추하고 주지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송현주는 비행기 모형을 소재로 한 프라모델을 가지고 논다. 엄밀하게는 그저 비행기라기 보다는 전투기로서 그 자체가 첨단의 가공할 무기들이다. 게 중에는 흔히 가미가제로 널리 알려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동원된 전투기 A6M2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의 주력 기종인 CORSAIR 등 이 분야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모형들이 적지 않다. 작가는 군 복무 시절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목격하고 일종의 시각적 숭고를 경험한 것이 이러한 취미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숭고는 칸트가 정론화한 특유의 미의식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에게 육박해오는 자연의 가공할 위력과 대면했을 때의 심리적 경험이다. 파스칼은 자연의 그 끝을 헤아릴 길이 없는 막막함과 광대함 그리고 아득함에 대해서 술회하는데, 이 역시 숭고의 감정과 통한다. 이 경험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신성에 눈을 뜬 것이다. 칸트와 파스칼이 자연에 기대어 이러한 숭고 내지는 자기초월을 경험하고 있다면, 송현주는 이와 똑같은 강도의 시각적 충격을, 그리고 때로는 자기부정을 동반할 만큼의 감각적 전복을 이 가공할 무기들에게서 경험하고 발견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힘의 세계는 논리적이고도 정확하다’고 하면서 그 살상무기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기계적인 구조와 시스템에 매료된다. 가공할 무기들을 오마주의 대상으로서 숭배하는가 하면 그저 개인의 유희나 놀이의 차원으로서 전이시켜 놓고 있는 작가의 이러한 행위 자체는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허물어진 경계에 대한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즉 전투기 조종사에게 실전은 오락실에서의 전쟁 시뮬레이션보다 그 심각성이 덜하거나 더하지 않다. 그에게 도덕과 윤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 자신이 이미 기계의 한 부속이고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최첨단의 컴퓨터랄 수 있는 전투기의 논리적이고 정확한 구조에 대한 작가의 경의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처럼 기계의 한 부속으로 전락한, 논리(논리기계)에 예속된 현대인의 초상화가 중첩돼 있다.
이와 함께 주로 1,2차 세계대전에 제작되고 동원된 전투기의 모형들이 일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조차 한다.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첨단의 상품을 생산하자마자 이를 곧장 골동화한다고 보는데(자본주의는 즉각적인 어필과 재빠른 노화 혹은 싫증을 욕망한다), 아마도 이러한 첨단의 기종들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기 모형에 대한 작가의 경의에는 이처럼 서정적이고 정서적인 환기력이 묻어난다.
송현주는 프라모델을 조립해 전투기 모형을 완성하는 놀이를 예술적으로 전용 혹은 승화한다. 놀이는 예술가가 삶의 현실에 개입하고 논평하고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쉴러는 놀이충동에서 예술의 계기를 본다). 상상력을 매개로 해서 결정적인 의미를 요구해오는 현실에 대해 비결정적인 의미를 대질시키고, 고도로 제도화된 현실을 허물어 비 혹은 탈 제도화하는 것이다. 전투기 모형을 조립하는 행위를 모티브 삼아 이를 여러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일종의 문명사적 논평을 가하고 있으며(그 논평에는 반성과 향수가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이를테면 실전에 투입되기에 앞서 천황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는 군인에게서 이러한 반성의 예가, 그리고 붓질을 가해 이미지를 지우거나 이미지를 미세하게 중첩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전투기의 형태를 모호하게 처리한 그림에서 향수의 예가 극대화된다. 말하자면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부터 끄집어낸 것 같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기계 혹은 살상기계가 내재하고 있는 심각성을 한갓 놀이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해체시킨다.
이를 위해 작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도입한다. 대략 프린트, 페인팅, 라인테이프, 프라모델 오브제, 프라모델 조립조형(물)이 어우러지는가 하면, 때로는 기성품과 창작 오브제가 하나로 결합되기도 한다. 예컨대 은박지를 이용해 만든 조형물을 기성의 차용된 이미지에 결부시키는 식이다. 이 방법과 과정들이 일정한 순서와 정해진 룰에 따라 중첩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틀을 지우고 허무는 우연성의 과정이 여기에 끼어들어 예기치 못한 화면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프린트는 마치 건축도면을 통해 건축물을 투시해 보듯 전투기 모형이 내재하고 있는 논리적이고 정확한 기계적 속성을 손에 잡힐 듯 전해준다. 때로는 여기에 티타늄의 표면질감이 더해져(실제로는 은색의 단색조 화면으로 나타난) 그 실재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송현주는 한갓 개인의 취미나 놀이가 예술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키고, 나아가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재인식(요새 말로는 재독서)과 함께 예술을 매개로 하여 현실에 개입하고 간섭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열어 놓고 있다. 예컨대 전쟁과 놀이, 역사적인 현실과 개인적인 유희, 그리고 특히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무는 과정을 통해서 예술의 표현범주를 증대시키고, 나아가 현실인식을 확장시킨다. 작가의 작업은 일견 전쟁을 가지고 놀며 폭력과 더불어 유희하는 일종의 유사행위에 비견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상에 잠재된 전쟁과 폭력 그리고 살해와 린치의 실체를 (우회적으로)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낯설게 하기의 실천논리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Song Hyun Ju / Invisible Paradox
송현주 / 인비저블 패러독스
2022.7.2~7.31
ARTBASE 26SQM
기계는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군에 갔을 때 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크고 당당하던지 아무 말이 필요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문명의 힘을 잊곤 한다. 판타지적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힘을 우리는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힘은 참으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를 너무나 무시한 채, 이미지 속의 판타지를 진실인양 믿고 살아간다. 힘의 세계는 논리적이고도 정확하다. 내 작업은 예술에서의 경계 허물기이다. 사진 같기도 하고, 디자인 같기도 하며, 건축물에서의 설계도(청사진)같기도 하다. 회화에서 드러나는 어법은 서로간의 경계지점을 넘나드는 세상에 대한 관조이다. (작업 노트 중에서)
Machine has a formidable power. When I had been in the army, I marveled to see aircraft carrier named Kitty Hawk. Since its fairly large size and a dignified appearance were beyond description, I had attained a spiritual state of perfect selflessness. We are easy to forget the power of civilization without our knowledge. We think the power seen in the world of matrix is natural. However, the power in the real is indeed realistic and direct. On ignoring, we keep on living with trust that image in the fantasy is true. The world of power is logical and exact. I break down boundary of fine art in my work. It seems to be a photo, design or blue print of building. The Language which is revealed at the picture is meditation about real world frequently cross over the boundary of them.
송현주 Invisible Paradox
우리는 원본은 사라지고, 복제되고 재현된 것들을 진짜라고 착각하는 시뮬라시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전장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전쟁을 접할 수밖에 없다. CNN 혹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보는 아프간 전쟁은, 전쟁을 찍어 방송하는 사람들이 속한 사회의 입장과 힘을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과 달리 재구성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분쟁의 한가운데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런 감정들을 외면하고 그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분리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전쟁의 부산물인 전투기나 전쟁 암호, 전함 등을 주로 그리는 작가 송현주에게도 전쟁은 이미 영화 같은 픽션일 뿐이다. 아니 그에게는 전쟁이 놀이 문화 정도로 가벼워졌다.
송현주는 사진병으로 복무하던 군 시절,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그 규모와 당당함에 놀라 무아지경에 빠져들 정도였고, 그것은 비행기 프라모델 제작이나 RC 비행기를 조정하는 취미로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로까지 연결되었다. 물론 그 이전의 작품에서 비행기나 무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비행기 조정하는 그림을 그려 상을 받기도 했고,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 그린 그림도 비행기, 무기와 전함이었다. 그 항공모함이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것이 분명한데, 역설적이게도 작가에게는 경이로움의 존재, 기계문명 발달의 찬란한 산물 정도로 인식되었다. 사실 이것은 전쟁을 실재로 경험하지 못하고 매스미디어나 영화를 통해 전쟁을 접한 현대인들이 갖는 솔직한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전투기나 폭탄 등을 어둡고 칙칙한 색이 아닌 화사하고 밝은 색깔로 처리했고, 바탕에는 비즈를 첨가해 화사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투기 뒤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설계도면 같은 도형과 기호들은 이 전투 기계들의 복잡하지만 논리적이고 정확한 면을 자랑하는 것 같다. 또 프라 모델의 오브제나 라인 테이프들을 그림에 붙여 프라모델 만드는 취미를 연장시키기도 했다. 전쟁 문명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단한 역설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아이러니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대표작 중 비행기의 실루엣을 조금씩 어긋나게 여러 겹 겹쳐 그린 것이 있다. 의도적으로 흔들어 놓은 이 화면에는 정의는 힘에 의해 지배된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살상무기들은 조금이라도 목표 위치를 잘못 조준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이런 상황은 그의 흔들리는 그림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최근 들어 작가는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나 전쟁과 관련된 심리적인 이야기들을 작품 속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장면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실재로 있지 않았던 상황을 연출하여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 작전을 위한 말표판의 이미지를 도입하여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 그림에 담기도 하고,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화면을 그리기도 한다. 또 군용기에 가문의 문양, 부대마크, 출격횟수를 나타내는 폭탄그림에서부터 핀업걸이나 애인의 이름, 미키 마우스 등을 그려 넣는 노즈아트에 착안해 에로틱하면서도 고전적인 여인을 그림에 등장시킴으로써 1,2 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심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미지는 판타지이며 판타지의 설계는 나에게 창작의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송현주”
매스미디어나 영화를 통해 받아들여진 하나의 문명은 작가의 손에서 다시 새로운 판타지로 태어나게 됐다. 그의 그림을 통해 전쟁으로 대표되는 문명을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모순될지도 모르는…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인간의 한 문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역설이 숨어있는 것이다.
장유정(샘터 화랑 큐레이터)
프라모델 조형을 통해 본 현실과 놀이와의 관계
프랑스의 사회문화 이론가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 소사이어티>(구경거리의 사회)란 저서에서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한 속성을 갈파한 바 있다. 현대사회는 그 자체가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장과도 같아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픽션, 영화보다 더 극적인 반전, 잔혹극보다 더 살 떨리는 폭력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건들이 현실 속에서 어김없이 구현된다. 이런 현실은 그 자체로서 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가공된 형태로 제시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이 미디어다. 미디어가 적나라한 현실을 한편의 극적인 영화로,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로 가공하고 각색해서 개인에게 전송해주는 것이다. 미디어는 말하자면 현실을 가공하고 각색하며 나아가 현실을 생산하기조차 한다. 미디어가 현실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질시키고, 삶의 장을 구경거리의 사회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미디어와 개인의 상상력과의 공모에 의해 9.11 사태 당시의 건물 폭파 장면은 초현실주의적 버전으로 재해석되고, 정치인의 선거운동은 한편의 가슴 찡한 휴먼드라마 혹은 배반과 거짓화해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편의 흥미진진한 픽션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서 미디어는 제도의 이데올로기를 실행하고 유포시키는 도구로 나타나며, 이에 대해 개인은 다만 이를 전송 받아 내재화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쌍방통행식의 미디어 자체는 하나의 비전일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론 사실상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런 구경거리의 사회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전쟁이다. 그러나 그 전쟁 자체는 적나라한 현실로서 보다는 그저 한편의 영화 속에서 재현된 전쟁장면과 구별되지가 않는다. 적어도 개별주체 속에서의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무디어졌고, 나아가 아예 그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고 지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은 그 자체로서 보다는 제도와 미디어가 유포시킨 온갖 이데올로기에 의해 덧칠된 형태로서 제시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현실, 진정한 일상은 끝내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해법으로서 제안된 것이 낯설게 하기다. 공기보다 친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일상에 덧씌워진 이데올로기의 더께를 걷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낯설게 하기의 유력한 방법 중 하나가 놀이고 유희다. 전쟁을 가지고 놀며, 폭력과 더불어 유희하는 것이다. 그 자체가 비록 소박한 유아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만큼 순진하고 미미한 방법일 수는 있으나, 여하튼 이를 통해 일상에 잠재된 전쟁, 폭력, 살해, 린치의 실체를 반추하고 주지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송현주는 비행기 모형을 소재로 한 프라모델을 가지고 논다. 엄밀하게는 그저 비행기라기 보다는 전투기로서 그 자체가 첨단의 가공할 무기들이다. 게 중에는 흔히 가미가제로 널리 알려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동원된 전투기 A6M2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의 주력 기종인 CORSAIR 등 이 분야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모형들이 적지 않다. 작가는 군 복무 시절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목격하고 일종의 시각적 숭고를 경험한 것이 이러한 취미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숭고는 칸트가 정론화한 특유의 미의식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에게 육박해오는 자연의 가공할 위력과 대면했을 때의 심리적 경험이다. 파스칼은 자연의 그 끝을 헤아릴 길이 없는 막막함과 광대함 그리고 아득함에 대해서 술회하는데, 이 역시 숭고의 감정과 통한다. 이 경험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신성에 눈을 뜬 것이다. 칸트와 파스칼이 자연에 기대어 이러한 숭고 내지는 자기초월을 경험하고 있다면, 송현주는 이와 똑같은 강도의 시각적 충격을, 그리고 때로는 자기부정을 동반할 만큼의 감각적 전복을 이 가공할 무기들에게서 경험하고 발견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힘의 세계는 논리적이고도 정확하다’고 하면서 그 살상무기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기계적인 구조와 시스템에 매료된다. 가공할 무기들을 오마주의 대상으로서 숭배하는가 하면 그저 개인의 유희나 놀이의 차원으로서 전이시켜 놓고 있는 작가의 이러한 행위 자체는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허물어진 경계에 대한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즉 전투기 조종사에게 실전은 오락실에서의 전쟁 시뮬레이션보다 그 심각성이 덜하거나 더하지 않다. 그에게 도덕과 윤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 자신이 이미 기계의 한 부속이고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최첨단의 컴퓨터랄 수 있는 전투기의 논리적이고 정확한 구조에 대한 작가의 경의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처럼 기계의 한 부속으로 전락한, 논리(논리기계)에 예속된 현대인의 초상화가 중첩돼 있다.
이와 함께 주로 1,2차 세계대전에 제작되고 동원된 전투기의 모형들이 일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조차 한다.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첨단의 상품을 생산하자마자 이를 곧장 골동화한다고 보는데(자본주의는 즉각적인 어필과 재빠른 노화 혹은 싫증을 욕망한다), 아마도 이러한 첨단의 기종들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기 모형에 대한 작가의 경의에는 이처럼 서정적이고 정서적인 환기력이 묻어난다.
송현주는 프라모델을 조립해 전투기 모형을 완성하는 놀이를 예술적으로 전용 혹은 승화한다. 놀이는 예술가가 삶의 현실에 개입하고 논평하고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쉴러는 놀이충동에서 예술의 계기를 본다). 상상력을 매개로 해서 결정적인 의미를 요구해오는 현실에 대해 비결정적인 의미를 대질시키고, 고도로 제도화된 현실을 허물어 비 혹은 탈 제도화하는 것이다. 전투기 모형을 조립하는 행위를 모티브 삼아 이를 여러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일종의 문명사적 논평을 가하고 있으며(그 논평에는 반성과 향수가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이를테면 실전에 투입되기에 앞서 천황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는 군인에게서 이러한 반성의 예가, 그리고 붓질을 가해 이미지를 지우거나 이미지를 미세하게 중첩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전투기의 형태를 모호하게 처리한 그림에서 향수의 예가 극대화된다. 말하자면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부터 끄집어낸 것 같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기계 혹은 살상기계가 내재하고 있는 심각성을 한갓 놀이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해체시킨다.
이를 위해 작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도입한다. 대략 프린트, 페인팅, 라인테이프, 프라모델 오브제, 프라모델 조립조형(물)이 어우러지는가 하면, 때로는 기성품과 창작 오브제가 하나로 결합되기도 한다. 예컨대 은박지를 이용해 만든 조형물을 기성의 차용된 이미지에 결부시키는 식이다. 이 방법과 과정들이 일정한 순서와 정해진 룰에 따라 중첩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틀을 지우고 허무는 우연성의 과정이 여기에 끼어들어 예기치 못한 화면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프린트는 마치 건축도면을 통해 건축물을 투시해 보듯 전투기 모형이 내재하고 있는 논리적이고 정확한 기계적 속성을 손에 잡힐 듯 전해준다. 때로는 여기에 티타늄의 표면질감이 더해져(실제로는 은색의 단색조 화면으로 나타난) 그 실재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송현주는 한갓 개인의 취미나 놀이가 예술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키고, 나아가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재인식(요새 말로는 재독서)과 함께 예술을 매개로 하여 현실에 개입하고 간섭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열어 놓고 있다. 예컨대 전쟁과 놀이, 역사적인 현실과 개인적인 유희, 그리고 특히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무는 과정을 통해서 예술의 표현범주를 증대시키고, 나아가 현실인식을 확장시킨다. 작가의 작업은 일견 전쟁을 가지고 놀며 폭력과 더불어 유희하는 일종의 유사행위에 비견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상에 잠재된 전쟁과 폭력 그리고 살해와 린치의 실체를 (우회적으로)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낯설게 하기의 실천논리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