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모전은 공모전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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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모전은 공모전다워야


1980년대 공모전 심사에 간 일 있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끙끙 앓는 게 보였다. 누굴 밀어야 하는데 내게 봉변당할 까봐 말은 못하고 혼자 앓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접근했다. “나한테 말씀하십시오. 내가 도와드리리다.” 작품도 괜찮았다. 입선을 도왔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가 말했다. “선생님이 남의 말을 들어주고, 또 이해하시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선 늘 나쁜 말만 들어서요.” ‘뿔 난 도깨비’ 인줄 알았다는 거다. 내가 말을 보탰다. 안 될 사람을 미는 건 정말 안 된다. 된 사람 때문에 누군가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간담회 자리에서 ‘도깨비’의 ‘도’자만 나와도 그간 예를 들면서 설명할 태세를 갖췄지만 질문은 없었다. 사전 취재가 다 된 모양이다. 설혹 몰랐어도 기자들 센스면 금세 알아채고 취재 가능하다. “어때, 만나보니 뿔 없지?” 하는 메시지도 잘 접수되었으리라. 

내 오랜 생각이 전람회는 전람회다워야 하고, 공모전은 공모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그려온 작품으로 경쟁하는 어린이 미술대회를 현장 실기대회로 바꾼 것이 1950년대 일이었다. 대부분이 그렇게 바뀌었다. 대학이 주최하는 미술대회까지 영향을 미쳤다.

내가 《국전》을 패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개혁을 위한 연구보고서와 제안도 많이 냈다. 물론 공식 의뢰를 받아 진행했다. 민전(民展) 운영에도 관여한 일 있다. 처음 잘 해서 성공하면 이내 마음이 바뀐다. 그땐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이번 회고전에 올 최신작 두 점을 냈다. 분홍색, 하늘색 바탕에 유백색 물감을 얹고 무수히 연필로 그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 뜻깊은 전시에 더 크고 새롭고 밀도 높은 작품을 내고 싶었다. 작년 가을 이후 과로에 따른 체력 저하가 120호 크기 작품으로 귀결됐다. 누구의 도움 없이 연희동 새 집 작업실에서 하루 꼬박 10시간 작업 끝에 얻은 나의 분신이다. 그래서 애착이 더 간다. 또 반대로 그간 주춤했던 창작욕을 자극해 구상과 제작에 몰입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게 이들 신작이다. 작가에게 창작 욕구는 삶의 의욕과 일치한다. 신기하게도 70년 화업의 첨병 노릇을 해온 내 손, 특히 바른손이 전과 다른 큰 몸짓으로 먼저 반응하며 앞장 설 태세다. 내 의식과는 별개로 말이다.

두 점의 신작은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을뿐 더러 1000만 달러를 준다 해도 팔지 않겠다는 장담을 보탰더니 매체마다 놓치지 않고 기사화했다.

〈허(虛)의 공간〉은 이번에 처음 내보이는 작품이다. 1970년 열린 《오사카엑스포》(Japan World Exposition) 한국관 미래전시실에 유일하게 전시된 미술작품 〈유전인자와 인간〉 세 작품 중 하나다. 갑장 친구인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은 한국관 설계와 전시까지 총괄했다. 나는 〈유전질〉 작업을 하던 중 인류의 달 착륙에 깊은 충격과 감명을 받아 무중력에 관심을 갖고 스프레이분사를 이용한 〈허상〉 작업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평소 내왕이 잦았던 수근이 미래전시실 개념에 부합한다며 내민 제안에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인간의 허체’가 주제다 보니 사람의 실체는 없고 옷만 입혀진 인간 형상을 한 입체작업이다. 그 옷 속에는 5와트 붉은 전구를 넣어 뛰거나 날아오르는 형상에서 환상적인 빛으로 우주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전인자…〉은 국내외 언론 반응이 무척 좋았다. 화보 특집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도약상을 과시하려는 정부의 엑스포 프로젝트와 김수근과 내가 예술로 접근하려했던 전시 의도와는 차이가 한참 컸다. 결국 ‘반정부 성향’이라는 판정을 받고 강제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 〈허의 공간〉은 회고전에 맞춰 49년 만에 다시 제작했다.

수근은 자기의 제안으로 만든 내 작품을 지켜주지 못한 데 항상 미안해했다. 나는 강제 철거에 대해 그 앞에선 두 번 다시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내가 오히려 “네 탓이 아니다. 정부  입장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해도 아쉬워하고 괴로워했다. 수근의 ‘지못미’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추호도 의심해본 일 없다.

인사말에서 밝혔듯 살아 있는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두 번씩 갖는다는 것은 보통 영광이 아니다. 남들은 한번 열기도 어려운 회고전이다. 물론 나에게는 전시장을 채우고도 남을 만한 대작들이 충분하기에 회고전 여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보다는 한국미술사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히 평가해주고 있다는 점이 더 영광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그렇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기획한 단색화전 이후 나와 단색화는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 굴지의 파리 페로탕 갤러리와 런던 화이트큐브의 전속작가가 되었으며 이미 100만 달러 클럽에 진입했다. 80년대 100호 크기 작품 1점에 300만원이 채 안 되던 시절과 비교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애들 교육시키면서 그림은 일체 안 팔릴 때가 있었다. 열심히 그릴수록 돈이 많이 들어가던 때이다. 대작을 하면 대작 캔버스 값이 엄청 났다. 그래도 대작을 했다. 1970, 80년대 대작을 갖고 있는 것은 나 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팔순 축하연 때 내가 답사하기를 날아가는 새도 손을 뻗쳐 잡을 기세였던 내가 이제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낀다고 했다. 1991년 첫 번째 회고전 때 어느 기자가 박서보 사단을 거론하며 대학교수 100명, 대학 강사 1000명, 그리고 영향권에 있는 제자 화가 3000명이라고 그 규모를 밝혔는데, 그게 다 ‘격동의 시대’ 때 이야기일 것이다.

대학에서 정년퇴임하고, 창작 외적인 화단 정치에도 일체 손을 뗐다. 권력을 내려 놓으니 주위 사람들과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 때 이야기를 부연하면 눈물 많았던 하인두(河麟斗) 형, 날카로운 평문 쓰던 이일 (李逸) 형, “인생 뭐해”하면 “뭐야” 하던 윤형근(尹亨根) 형, 서로 “정박” “박박” 하던 다정다감하던 정창섭(丁昌燮) 형... 점점 전화할 사람이 없어져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지만, 그나마 친교 54년(2011년 기준)의 김창열(金昌烈) 형이 있어 삶의 위안을 받는다고 했었다. 

이번 회고전 개막식에서 창열과 내 눈이 마주쳤다. 둘은 한동안 서로 쳐다봤다. 창열은 힘이 무척 부쳐 보였다. 힘들면 가만히 있어라. 말하려 하지 말고. 말 안 해도 안다. 개막식 인사말 뒤에 창열이 이야기를 붙였다.

“김창열이 저하고 절친한 친구입니다. 아까 만나봤더니 눈동자가 많이 흐려가지고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마음이 찢어지는지 내가 저 친구를 잃을까봐 걱정입니다. 그 친구가 장수하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이제 창열마저 죽으면 정말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내가 ‘인생’들에게도 부탁한다. “어이, 인생들! 창열이 오래 살게 잘 좀 도와주게나.” 

내친 김에 칠순 출판기념식 때 내 답사도 떠올려 본다.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지만 아직도 내 메시지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나는 ‘앞에 가는 똥차 비키시오’하고 선배들을 향해 소리쳤답니다. 이와 똑같은 말투로 ‘앞서 가는 똥차 비키시오’하고 부메랑처럼 내게도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중략) 아무리 비켜서라 소리 쳐도 나는 비켜설 의향이 없습니다. 자신 있거든 추월해 가시구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대답일 겁니다.”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안은영 씨가 한국현대미술에 대해 자료수집 차 나를 몇 차례 인터뷰하러 왔을 때 이 이야기를 듣고는 호주에서 박사학위 논문 발표 때에도 심사위원들 앞에서 똥차 이야기를 넣어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들었다. 수고스럽지만 앞으로 이야기도 넣어줄 수 있으면, 좀 부탁하네. “~ 할 일은 많은데 해는 저물어 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저물라면 저물어야지 도리 없지 않느냐. 인공조명을 때려서라도 내 할 일 해갈 것이다.”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90516032851005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1905211117001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527/95708394/1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7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