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Ecriture〉라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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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criture〉라는 식당


〈에크리튀르·Ecriture〉와 ‘단색화(Dansaekhwa)’가 세계 미술계 인기 검색어의 하나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는 오래다. 작년 3월 아시아 소사이어티 Game Changer Awards를 수상하러 홍콩에 갔다가 퀸스로드에 있는 26층 짜리 H Queen’s 빌딩 꼭대기층의 최고급 프랑스식당 이름을 내 작품 명제 〈Ecriture〉로 지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2성급 미슐랭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프랑스인 오너는 내 그림을 엄청 사 모으는 콜렉터란다. 식당에도 내 그림이 걸려 있다.  H Queen’s는 규모가 큰 미술품도 전시가 가능토록 한층 높이가 7미터에 이르게 설계한 화랑빌딩으로 한국의 서울옥션을 비롯해 홍콩에 지점이 있는 국제적인 화랑들이 이곳에 입주해있다. 나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상을 타러 갔다가 이러한 빌딩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한번 찾아가려 했으나 공사 중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을 비롯한 전세계 미식가들이 식당 후기를 인터넷에 올려 이야기들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현역 작가로서는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본인은 아직도 ‘눈팅’ 중이지만 말이다.

에크리튀르 레스토랑 홈페이지 https://ecriture.squarespace.com


내가 좌우명처럼 즐겨 쓰는 문구의 하나가 “변해도 추락하고 변하지 않아도 추락한다”이다. 내 회고전 기사 쓴 기자들이 이 주장의 문구를 내 묘비명에 쓸 것이라고 앞 다퉈 보도했다. 묘비명으로 쓸 것인지 최종 확정 여부는 그 때 가봐야 안다. 그 사이 변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추락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추락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아이디어만으로 ‘거저’ 변하려하기 때문이다. 그건 껍데기만 변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작업과 병행해 4-5년 준비기간을 거쳐 내 신체 일부처럼 익숙해졌을 때 새 작업을 일시에 발표한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峯村敏明, 1936- , 국제미술평론가연맹 일본지부 회장)은 “박서보 선생이 변하면 한국 화단이 변합디다. 당신은 한 번도 추락하는 걸 못 봤어요. 당신이 천재요? 천재기 때문에 그런 거요?”라고 물은 적 있다. 내가 답했다. “당신이 나를 제대로 못 봤습니다. 연필 작업에서 지그재그 작업으로 변할 때 꼭 5년이 걸렸소.”

 내 나이 내일 모레면 아흔이다. 그래도 변해야 한다. 앉아서 추락할 수는 없다. 젊어서 뜻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 한창 숙성 중이다.    

2021년 봄,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사진 / 김경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