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박서보로 개명(改名)
서양화과 동료 이원용은 광주 보병학교 훈련을 같이 받은 CSMC 21기 동료이다. 아울러 같은 ‘도망병’이다. 둘은 훗날 아호로도 쓸 새로운 이름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더구나 입영 거부라는 억지 누명을 씌워 막무가내 잡아다 입대시키려 드니 이참에 이름을 바꾸자고 결론 내렸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맹인재(孟仁在, 1930- , 미술사)를 불러 우리의 생각을 설명하고 작명을 부탁했다. 맹인재는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위지만 한 해 늦게 입학했다. 내가 3학년에서 2학년으로 내려앉는 바람에 동기가 되었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4, 미술사) 선생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과 환기미술관장을 역임할 만큼 학구적이기도 하다.
석조전 국립박물관 시절인 1950년대 말. 제일 뒤가 맹인재, 앞줄 좌로부터 김충선, 장욱진, 정규, 최순우
맹인재가 가져온 이름은 수헌(樹軒)과 서보(栖甫)였다. 원용이 먼저 입으로 중얼중얼 불러보더니 수헌을 골랐다. 서보는 당연 내 몫이었다. 둘은 옛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생활했다. 1955년 일이다. 그해 가을 나는 《국전》에서 박서보라는 이름으로 입선했다.
1957년 제2회 현대전 때의 이수헌, 화신백화점에서
9. 박서보로 개명(改名)
서양화과 동료 이원용은 광주 보병학교 훈련을 같이 받은 CSMC 21기 동료이다. 아울러 같은 ‘도망병’이다. 둘은 훗날 아호로도 쓸 새로운 이름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더구나 입영 거부라는 억지 누명을 씌워 막무가내 잡아다 입대시키려 드니 이참에 이름을 바꾸자고 결론 내렸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맹인재(孟仁在, 1930- , 미술사)를 불러 우리의 생각을 설명하고 작명을 부탁했다. 맹인재는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위지만 한 해 늦게 입학했다. 내가 3학년에서 2학년으로 내려앉는 바람에 동기가 되었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4, 미술사) 선생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한국미술사학회 회장과 환기미술관장을 역임할 만큼 학구적이기도 하다.
석조전 국립박물관 시절인 1950년대 말. 제일 뒤가 맹인재, 앞줄 좌로부터 김충선, 장욱진, 정규, 최순우
맹인재가 가져온 이름은 수헌(樹軒)과 서보(栖甫)였다. 원용이 먼저 입으로 중얼중얼 불러보더니 수헌을 골랐다. 서보는 당연 내 몫이었다. 둘은 옛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생활했다. 1955년 일이다. 그해 가을 나는 《국전》에서 박서보라는 이름으로 입선했다.
1957년 제2회 현대전 때의 이수헌, 화신백화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