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ZE SEOUL 2025
Park Seo-Bo’s colors drawn from nature
박서보의 색, 자연에서 빌려오다
Park Seo-Bo x LG OLED
Frieze Seoul 2025 | A collaboration between LG OLED and the PARKSEOBO FOUNDATION
FRIEZE SEOUL 2025
Park Seo-Bo’s colors drawn from nature
박서보의 색, 자연에서 빌려오다
Park Seo-Bo x LG OLED
Frieze Seoul 2025 | A collaboration between LG OLED and the PARKSEOBO FOUNDATION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서, 한국의 거장 박서보는 기술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단순하지만 깊이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21세기에 회화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2000년대는 세계화가 본격화되고, 예술가들이 자라 온 환경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세상이 변화하는 시대가도래한 때입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명상적 태도로 작업에 열중했던 박서보에게 절실한질문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그의 작업은 흑백에서 새로운 색채의 시대로 나아갔습니다. 작가가 세계를탐구하고 해석하는 여정에서 시대가 던지는 도전에 대응하는 변화였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그 질문을 떠올립니다. 속도와 자극, 과잉으로 정의되는 시대, 이미지가 끝없이 쏟아지고 순식간에 잊혀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박서보의 색이 품었던 자연의 느린 존재감과 고요함이 가득한 정반대의 리듬을 제안합니다. 관객들은 소음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빛과 침묵, 몸의 고요한 감각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마주하며, 예술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그 자리에서깊이 호흡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박서보는 전후 한국 추상미술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자, 단색화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격동과 전환의세기를 온몸으로 겪어 냈습니다. 그의 삶은 전쟁과 식민지배, 권위주의 체제와 현대화의 급격한 흐름 속에서살아남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이 복잡한 역사 한가운데에서, 박서보는 예술이 현실에 대응하거나 도피하는것이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술이 단지 시대의 거울 역할을 넘어 오히려 치유의 영역으로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반복과 노동, 리듬은 감정을 받아들이고 체화하여 변환시키는 그의 몸짓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불안정함, 기대와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나는 내 그림이 흡인지가 되어 그 스트레스를 빨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치유,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회화가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이 전시는 박서보의 발언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사유하며, 원작 ‘묘법’ 작품과 고화질 LG OLED 디지털해석 작업을 함께 선보입니다. 전시 공간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전통과 혁신, 신체와 스크린 사이에서 깊은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들 두 형식은 대립이 아닌 대화를 하도록 배치되었고 전시 부스의 유기적이고 자궁과 같은 구조는 관람객들에게 부드러운 동선을 제안합니다. 회화와 디지털 스크린, 곧 빛과 물질은 관람객들에게 고요함을 선사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전시의 중심에는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고, 그저 바라보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한지를 새로운 매개체로 자신의 캔버스에 들인 박서보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색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색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 상징과 깊이를 화면에 담아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흑과 백은 이 새로운 묘법 시대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옛 부엌 아궁이의 그을음처럼 겹겹이 내려앉은 검은색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박서보는 시간과 함께쌓인 그을음에서 우주 끝에 닿을 것 같은 깊이를 느꼈고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숭고한노동과 희생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흰색은 표백되지 않은 소박한 질감을 품고, 조선 백자의 고요한기운과 한지의 비어 있음 속에 머무는 선비의 정신을 담고 있었습니다.
박서보의 색채묘법 연작은 2000년대 초반, 창작의 벼랑 끝에 서 있던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절벽 끝”에 서 있다고 표현하며,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 이 시대에 회화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가을, 박서보는 산책을 하던 중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압도적인 단풍을, 그 단풍이 내뿜던 강렬한 붉은 색을 마주합니다. 어지러운 마음을 강력한 힘으로 치유해 주었던자연 앞에서, 70대의 화가는 다시 한번 변화를 다짐합니다. 박서보가 자연으로부터 색을 빌려오기로 마음 먹은 순간이었습니다.
붉은색은 색채의 시작이자, 사고와 감각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거친 에너지를 담고 있었고, 동시에 시간과 덧없음, 죽음이라는 개념과의 정면으로 맞서는 색이기도 했습니다. 박서보는 이 색을 ‘자신을 무릎 꿇게 만든 색’이라 표현했습니다. 그에게 붉은색은 존재의 미약함을 일깨우는동시에, 자연이 지닌 재생의 힘을 상기시키는 색이었습니다.
제주도의 봄, 섬 전체를 물들이는 유채꽃밭에서 노란색을 담아냅니다. 하지만 박서보에게 이 노랑은 단지 밝은 색이 아닌, 새로움의 정서적 에너지를 지닌 색이었고, 시작과 용기, 가장 연약한 존재 안에 숨어 있는 낙관을 말해주는 색이었습니다.
초록은 그의 작업에서 가장 오랜 동반자였습니다. 일상 속에 조용히 함께 해 온 풀잎과 나뭇잎이 품은 존재의리듬입니다. 초록은 단지 색이 아닌, 진동이고, 맥박이며,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후 다양한 색조가 팔레트에 더해졌고, 각각은 고유의 정서적 무게를 지닙니다. 주황은 잘 익은 감의 색으로, 성숙과 가을의 풍성함을 의미했고, 분홍은 진달래꽃에서 빌려온 색으로, 그리움과 정서적 기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색들은 개념적인 색이 아닌 삶으로 체득한 색이었기에, 각 색조는 기억을 품고 있었고, 겹겹이 쌓인 한지와 물감의 층에는 숨결과 감정, 상실의 메아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회화들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대신 잔잔히 울립니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느껴보라고 조용히 권합니다.
LG의 OLED 기술을 통해 구현된 살아있는 색들은 박서보의 색에 대한 감각을 깊고 정밀하게 확장합니다. 캔버스나 한지의 질감을 흉내내기 보다, 오히려 빛과 리듬, 감정의 온도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특질들을 드러냅니다. 완벽한 블랙과 자발광 픽셀을 가진 OLED 화면에서 확장되는 이 작업들은 단순한 디지털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관점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이것은 현대적 감각에 익숙한 동시대 관객들이 작가가 평생 이어온 명상적 탐구를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관람객들은 물리적 작품과 디지털 작품이 서로 다른 형태로 만나는 장을 통해 두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시간과 재료가 새긴 촉각의 세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빛으로 가득한 무형의 세계입니다. 각각은다른 방식을 통해 명상적 사유의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두 갈래의 흐름 속에서 박서보가 던진 질문은관람객들의 마음에 더욱 또렷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오늘, 회화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소란하고 단절된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아름다움 그리고 서로가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박서보는 그것이 21세기 예술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이라 믿었습니다. 프리즈 서울에서, 아트페어의빠른 속도에서 이 전시는 잠시 멈추어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박서보는 ‘소음’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에게 ‘침묵’이라는 선물을 남겼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사유는 관람객들의 감각을 통해 살아나고 확장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