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아트 노스탤지어 2회)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제1회 광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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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아트 노스탤지어 2회]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읽기 https://www.arte.co.kr/art/theme/1351

광주비엔날레의 시상제도는 지금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1회 비엔날레는 신생 비엔날레에 작가들의 참여를 끌어내고자 대상 1인과 특별상 3인을 선정. 수상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현대미술에 우열을 매기는 건 난센스라는 안팎의 지적에도 불구, 작가 참여를 견인하려는 목적이 컸다.

제1회 대상은 '잊어버리기 위하여(Para Olvidar)'를 출품한 쿠바의 알렉시스 레이바 마차도(Alexis Leyva Machado, 1970~ ), 예명 크초(Kcho)에게 돌아갔다. 상금 5만달러(4500만원). 특별상은 한국의 김정헌(1946~ ), 미국의 다이애나 새터(Diana Thater, 1962~ ), 호주의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 1960~ )이 수상했다. 부상은 순금 행운의 열쇠.

크초는 쿠바 국적이어서 한국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했다. 작품제작을 위해 방한할 수 없었던 그는 2500개의 빈 포도주(VINO) 병을 모아 그 위에 매우 낡은 배를 올려놓으라고 지시하는 스케치만 팩스로 보내왔다. 이때 VINO라는 단어를 두고 ‘포도주’라는 필자와 ‘맥주’라는 전시부 내 다수 유학파 의견이 엇갈렸는데, 결국 맥주병으로 유학파의 주장이 먹혔다.

물론 바로 오류를 깨달았지만, 이미 광주 오비맥주공장에 병을 부탁한 후라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개막식에 온 작가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했지만, 포도주 병이 맥주병으로 바뀌고 낡은 배를 구하려고 TV뉴스에 배를 구한다는 자막까지 내보냈던 일을 생각하면 당시 에피소드만 모아도 책 두서 너 권은 족히 될 것이다.

1997년 2회 비엔날레는 처음엔 시상제도를 폐지할 것처럼 했으나, 결국 ‘지구의 여백’이란 주제 아래 5개의 소주제로 나눠 전시를 구성했다. 이때 주제별로 5명에게 공로상을 줬는데, 각각 3000달러(약 270만원)를 상패와 함께 수여했다.

그리고 3회는 월드컵과 비엔날레를 같은 해에 열려는 계획에 따라 한해를 건너뛰어 2000년에 열었다. 이때부터 유야무야 이유도 없이 시상제도가 사라졌다가 2010년 8회를 맞아 ‘눈 (NOON) 예술상’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때는 2개 부문을 시상했는데, 중견작가에게 수여하는 ‘2010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은 폴란드계 영국인 구스타프 메츠거(Gustav Metzger,1926~2017), 신인에게 수여하는 눈 후원상은 양혜규(1971~ )가 받았다. 상금은 각각 5만달러(4000만원), 2만달러(1800만원)로 상금과 함께 상패가 수여됐다. 상의 이름 ‘눈(Noon)’은 인간의 시감각 기관인 ‘눈’과, ‘전성기’ ‘절정’ ‘최고점’을 뜻하는 영어단어 ‘Noon’을 중의적으로 담아낸 것이었다.

2012년 9회 광주비엔날레의 ‘눈 예술상’은 한국의 문경원·전준호가, 후원상은 일본의 모토유키 시타미치(Motoyuki Shitamichi, 1978~ )가 수상했다. 상금은 각각 1만달러(900만원), 5000달러(450만원)로 줄었다. 2014년 10회 예술상은 이불(1964~ ), 후원상은 세실리아 벵골리아(Cecilia Bengolea,1979~ )와 프랑수아 세뇨(François Chaignaud,1983~ ) 듀오가 수상했다. 상금은 전 회와 같았다. 또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상은 32세에 요절한 일본의 테츠야 이시다(Tetsuya Ishida, 1973 ~2005)에게 돌아갔다.

2016년 11회부터 시상제도를 없앴다. 믿을 수 없지만, 매회 적어도 30억원 정도의 국비 지원을 받는 광주비엔날레가 시상식에 쓸 예산 1500만 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렇게 없어진 시상제도를 슬그머니 부활시켜 2023년 14회부터 ‘박서보 예술상’이란 명칭의 시상제도를 시행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14회부터 2042년까지 20년 동안 매회 상금 10만달러(1억3000만 원)의 박서보 예술상을 시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을 두고 '군사독재 시절 관변 미술계 수장',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외면한 '광주 정신과 무관'한 인사라는 이유로 폐지를 위한 1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개막 초기 '비엔나 소시지를 절대 반지로 표현'한 자해 홍보영상만큼 불편한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1년 전 ‘박서보 예술상’을 제정한다고 발표했을 때는 한마디 없다가 막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폐지’를 주장하는 행태다. 후배 예술가 양성을 위해 선의로 적잖은 사재를 내놓은 박서보가 표적이 되고 있다.

사실 ‘박서보 예술상’에 대한 답은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가 먼저 해야 한다. 재단 측은 왜 갑자기, 뜬금없이, 어떤 이유로 시상제도가 필요했는지 설명부터 해야 한다. 단지 기부자가 나타나 상을 만들었다면 무책임 한 일이다. 어느 인사의 말처럼 광주비엔날레가 생존작가의 이름을 딴 예술인상을 제정하기 전, 그 예술인의 삶의 궤적이 광주정신에 합당한지 등을 제대로 살폈어야 했다.

또 폐지론자들의 주장대로 설혹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명성에 숟가락을 얹을 요량으로 박서보와 기지 재단이 기부 의사를 표시했다 하더라도 비엔날레재단이 이를 간파하고 거부하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 또 시민과 지역 미술인들의 의중을 살피지 않은 책임도 있다. 상의 제정도 폐지도 비엔날레 몫이고 재단의 권한이며 결정인데, 왜 상금을 기부한 박서보가 성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폐지론자들은 힘 있는 재단에 대한 관대함을 박서보의 삶의 궤적을 과하게 들춰내는 선명성으로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삶까지 비난받을 이유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이도 없다. 오늘날 미술인으로서 박서보의 예술적 성과는 “사유는 없고 노동만 있는 작품”이란 혹평부터 “한국적, 동양적 사유의 세계를 ‘비워내는 행위’를 통해 현대적으로 구현했다”는 호평까지 작품에 대한 비평은 어느 누구의 무슨 말도 가능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비평은 하되, 비판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을 두고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누구나 치열하게 살아 온 때문이다. 박서보도 그렇다. 상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박서보가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고, 민족기록화로 1973년 '수출선박', 1976년 '설법으로 왜장을 감동 시킨 사명당(송운대사)'를 그렸다는 이유로 “군사독재 정권 관변 미술계 수장”, “4·19 혁명에 침묵하고, 5·16 군부정권에 순응했으며 군사독재 정권이 만든 관변 미술계의 수장이자 미술 권력자”라 상을 폐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라면 앞으로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들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상의 폐지를 진정 원한다면 결정권을 가진 (재)광주비엔날레에 존폐를 요구할 일이다. 재원을 기부한 박서보를 비난하고 기부를 철회해 상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는 태도도 아니고, 기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상이 꼭 필요해 기부자를 찾다보니 상의 명칭을 ‘박서보 예술상’이라 한 것인지, 기부의사를 밝히자 재단이 알아서 ‘박서보 예술상’을 만들어 준 것인지부터 따져야 할 것이다. 또 기부자 박서보 삶의 공과 중 지나치게 과에 대한 지적과 주장을 일삼는 것은 상의 폐지가 목적이 아니라 소위 미술계의 고질적인 진영논리에 의한 속칭 모더니즘 계열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상의 폐지론자들도 이 점을 유념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상을 제정한 당위성을 재단에 묻고, 기부자 개인의 인간적인 흠결을 지적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재단도 보도자료 하나로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상의 제정이유를 설명해 선의의 기부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는 상을 제정한 당사자인 재단과 광주시가 기부자에게 쏟아지는 비난 뒤로 숨는 태도는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