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폐지… 그래서 그다음은?
원본기사 : http://art.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5/18/2023051802384.html
지난 4월 6일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박서보 예술상 1회 수상자가 선정됐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하여 미술계가 더욱 힘을 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공염불이 됐다.
첫 시상 후 한 달 만인 지난 10일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 폐지됐다. 비엔날레재단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서보 예술상 폐지를 알렸다. 같은 날 열린 제186차 이사회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6일 비엔날레 개막식장 한쪽 편에서 예술상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이후로도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박서보 예술상을 없애라는 시위가 잇따랐다. 미술계 안팎으로도 상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며 정작 비엔날레 자체보다도 예술상이 더 이름값을 하는 ‘주객전도’ 모양새로 변질돼 간 끝에, 박서보 예술상은 모두 상처만 입은 채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촌극으로 남게 됐다.
만들 때도 뚝딱 만들더니 없앨 때도 뚝딱 없애버렸다. 이로써 광주비엔날레는 해당 예술상이 졸속 행정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몸소 인정한 꼴이다. 애초에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채 예술상을 만들었던지, 혹은 이를 감내하고서라도 단행하려는 의지가 처음 계획(?)보다는 부족해진 건지, 둘 중 어느 쪽이든 한국 최고(最古)이자 최대 비엔날레가 보일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예술상을 반대하는 측의 요지는 박서보 예술상 자체가 광주의 민주화 정신과 상통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비엔날레의 설립 배경과 박서보가 걸어온 길이, 요즘 많이들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결이 다르다’라는 것이었다. 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됐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주비엔날레의 설립 취지를 살펴봐야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은 물론,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리고 이를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킨다는 직접적이며 뚜렷한 어젠다를 주축으로 창설됐다. 그 배경과 뿌리는 출범한 1995년 이래 한결같았다. 광주항쟁의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또 그를 정체성으로 삼은 비엔날레이기에, 특히 광주 지역 미술가들의 반발이 엄청 났다. 광주와 박서보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광주 민주정신의 위배라는 주장이었다.
짐작해보건대, 광주비엔날레가 애초에 이 상을 제정한 데에는 박서보 화백의 국제적 명성을 광주비엔날레에 유치할 수 있을 거란 기대, 그리고 100만 달러란 거액을 작가로부터 기탁 받음으로써 광주비엔날레 홍보를 도모할 수 있을 거란 기대 정도로 추려질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상에 대한 반발을 예상했다는 전제 하에, 어쨌거나 그로써 얻을 실보다는 득이 더 크다는 판단에 예술상을 만든 것일 텐데, 그렇다면 부정 여론이 이렇게까지 클 거라는 건 예측을 못 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반대조차 넘어설 배포도 없으면서 상 제정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박서보 예술상은 없어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사안과 문제를 인정하고 이를 책임지는 태도가 선행돼야 할 테다. 허나 광주비엔날레는 이번 일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예술상을 없던 일로 한다는 공식 발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뤄졌는데, 이 내용 또한 그야말로 ‘유체이탈화법’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0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재단 측은 최근 제기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폐지 의견과 관련하여 그동안 예술상의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다양한 미술계로부터 의견을 청취했으며 기지재단 측과도 협의를 지속했다. 재단 측은 박서보 화백이 후배 예술가들을 지원하려는 취지에 공감해 제정한 이 상이 폐지됨에 따라 향후 각계의 의견을 들어 시상 제도를 보다 발전적으로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광주비엔날레와 박서보 화백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모두 즉답을 피했다. 특히 비엔날레재단이 밝힌 ‘시상 제도를 보다 발전적으로 강구해 나갈 계획’에 대해 묻고자 했으나 비엔날레재단 측은 해당 보도자료에 쓰인 내용 외에 더는 언급할 것이 없다고 못 박았다.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몸을 사리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아시아 대표 비엔날레라는 광주비엔날레가 내보일 만한 책임 있는 처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박서보 예술상은 폐지됐고 그래서 그다음은 대체 무엇인지 광주비엔날레에 묻고 싶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폐지… 그래서 그다음은?
입력 : 2023.05.18 18:01
원본기사 : http://art.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5/18/2023051802384.html
지난 4월 6일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박서보 예술상 1회 수상자가 선정됐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하여 미술계가 더욱 힘을 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공염불이 됐다.
첫 시상 후 한 달 만인 지난 10일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 폐지됐다. 비엔날레재단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서보 예술상 폐지를 알렸다. 같은 날 열린 제186차 이사회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6일 비엔날레 개막식장 한쪽 편에서 예술상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이후로도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박서보 예술상을 없애라는 시위가 잇따랐다. 미술계 안팎으로도 상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며 정작 비엔날레 자체보다도 예술상이 더 이름값을 하는 ‘주객전도’ 모양새로 변질돼 간 끝에, 박서보 예술상은 모두 상처만 입은 채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촌극으로 남게 됐다.
만들 때도 뚝딱 만들더니 없앨 때도 뚝딱 없애버렸다. 이로써 광주비엔날레는 해당 예술상이 졸속 행정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몸소 인정한 꼴이다. 애초에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채 예술상을 만들었던지, 혹은 이를 감내하고서라도 단행하려는 의지가 처음 계획(?)보다는 부족해진 건지, 둘 중 어느 쪽이든 한국 최고(最古)이자 최대 비엔날레가 보일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예술상을 반대하는 측의 요지는 박서보 예술상 자체가 광주의 민주화 정신과 상통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비엔날레의 설립 배경과 박서보가 걸어온 길이, 요즘 많이들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결이 다르다’라는 것이었다. 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됐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주비엔날레의 설립 취지를 살펴봐야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은 물론,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리고 이를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킨다는 직접적이며 뚜렷한 어젠다를 주축으로 창설됐다. 그 배경과 뿌리는 출범한 1995년 이래 한결같았다. 광주항쟁의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또 그를 정체성으로 삼은 비엔날레이기에, 특히 광주 지역 미술가들의 반발이 엄청 났다. 광주와 박서보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광주 민주정신의 위배라는 주장이었다.
짐작해보건대, 광주비엔날레가 애초에 이 상을 제정한 데에는 박서보 화백의 국제적 명성을 광주비엔날레에 유치할 수 있을 거란 기대, 그리고 100만 달러란 거액을 작가로부터 기탁 받음으로써 광주비엔날레 홍보를 도모할 수 있을 거란 기대 정도로 추려질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상에 대한 반발을 예상했다는 전제 하에, 어쨌거나 그로써 얻을 실보다는 득이 더 크다는 판단에 예술상을 만든 것일 텐데, 그렇다면 부정 여론이 이렇게까지 클 거라는 건 예측을 못 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반대조차 넘어설 배포도 없으면서 상 제정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박서보 예술상은 없어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사안과 문제를 인정하고 이를 책임지는 태도가 선행돼야 할 테다. 허나 광주비엔날레는 이번 일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예술상을 없던 일로 한다는 공식 발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뤄졌는데, 이 내용 또한 그야말로 ‘유체이탈화법’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0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재단 측은 최근 제기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폐지 의견과 관련하여 그동안 예술상의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다양한 미술계로부터 의견을 청취했으며 기지재단 측과도 협의를 지속했다. 재단 측은 박서보 화백이 후배 예술가들을 지원하려는 취지에 공감해 제정한 이 상이 폐지됨에 따라 향후 각계의 의견을 들어 시상 제도를 보다 발전적으로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광주비엔날레와 박서보 화백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모두 즉답을 피했다. 특히 비엔날레재단이 밝힌 ‘시상 제도를 보다 발전적으로 강구해 나갈 계획’에 대해 묻고자 했으나 비엔날레재단 측은 해당 보도자료에 쓰인 내용 외에 더는 언급할 것이 없다고 못 박았다.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몸을 사리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아시아 대표 비엔날레라는 광주비엔날레가 내보일 만한 책임 있는 처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박서보 예술상은 폐지됐고 그래서 그다음은 대체 무엇인지 광주비엔날레에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