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주 비엔날레’인가…아트전과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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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광주 비엔날레’인가…아트전과 차이가 없다

원본기사 : https://m.hani.co.kr/arti/culture/music/1087696.html?fbclid=IwAR0MrpwO-yR_n5ZM2s0Z8DuLntUpnuO74vNW6Hf_8xN-z6SB-XEiiid8f34


2023 광주비엔날레 가보니
79명 본전시 역대 최대 규모 자랑
튀고 날선 담론이 안보이는 한계



지난 8일 오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관의 3전시실 ‘조상의 목소리’ 섹션 현장. 멕시코 작가 노에 마르티네스가 도자기 설치작품 앞에서 노예로 팔려 간 선조들의 혼령을 부르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는 계속 진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변질과 고사로 이어질 뒤안길로 접어든 것인가.


전시장의 영상과 몸짓들은 아름다웠다. 드넓은 아마존 강을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인어의 자태를 부감한 아름다운 영상과 수백년 전 조상을 질박한 도자기 그릇을 만지면서 불러내는 작가의 율동이 퍼져갔다. 하지만 전시의 막을 올린 개막식 무대에선 전시의 권위를 빌어 미술권력으로 군림했던 원로작가 명의의 상을 만든데 대한 항의 펼침막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난 1995년 창설된 이래 아시아 최대규모의 격년제 국제미술제로 자리를 잡은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봄 의문과 논란을 낳으면서 열네번째 행사의 막을 올렸다. 지난 7일부터 무려 다섯군데의 전시장에서 펼쳐지며 시작한 작가 79명의 본전시와 9개 나라가 참여한 파빌리온(국가관) 전시다. 역대 최대규모를 자랑하지만, 한국 미술판 사람들에게 올해 행사는 또 다른 성찰의 여지를 안겨주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요체는 두개의 물음으로 요약된다. 신선한 담론을 내놓는 비엔날레의 본령에 맞는가? 미술관의 고급스러운 기획전시와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

올해 비엔날레 총사령탑으로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의 국제미술수석큐레이터인 이수경 예술감독은 2년 전 감독선임 당시 차분한 명상적 주제를 내세웠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공력이 아무리 굳센 것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유약한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노자의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질성을 포용하며 세상 만물에 유연하게 스며드는 물의 속성처럼 지구촌 사람들이 서로 정의롭게 공존하고 연대하는 문화적 단면을 세대와 시대 지역은 달라도 공통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드러내겠다는 며 이질성을 포용하는 물의 속성을 전시에 반영한 것이다. 그는 5일 광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열린 주제이기에 주제 자체가 모든 작품에 하나하나 드러난다기보다는 하나의 행성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보고 예술의 힘을 생각해보는 태도 접근방법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본전시관 2전시실 ‘은은한 광륜’에 선보인 유지원 작가의 설치작품 <한시적 운명>. 카드보드와 같은 헐거운 종이 재료로 만든 건축구조물의 단면 이미지를 통해 성찰을 도외시하고 내달려온 한국 도시사의 풍경을 은유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전시 자체의 완성도는 역대급이라고 평가할 만큼 빼어난 편이다. 1~5전시실의 동선을 처음 거꾸로 뒤바꿔서 5전시실부터 시작한 전시 들머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흙과 잔디가 깔린 숲 같은 공간에서 하늘과 물 등의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인공수조 위의 영상으로 형상화한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예술가인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 ‘바침’(2023년)이 펼쳐졌다. 2전시실 ‘은은한 광륜’에선 광주 출신의 유지원 작가가 허접한 카드보드 재료로 몬드리안의 색면화를 방불케하는 추상적인 건축구조물의 단면 이미지를 통해 성찰을 도외시하고 내달려온 한국 도시사의 풍경을 은유적으로 표상했다. 광주 지역 놀이패 신명의 배우들과 무대 모습을 초상화처럼 옮긴 알리자 니센바움의 그림과 오윤의 판화에서 영감을 받아 광주항쟁의 집단 저항과 연대의 순간들을 형상화한 타이 작가 팡록 술랍의 대형 판화 연작들은 울림이 깊었다.


3전시실 ‘조상의 목소리’ 섹션 현장에서는 멕시코 작가 노에 마르티네스가 도자기 설치작품 앞에서 통통 뛰거나 패각류 고리를 찬 발목을 굴리면서 노예로 팔려간 선조들의 혼령을 큰 소리로 부르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전시관 4전시실 ‘일시적 주권’ 섹션에 나온 장지아 작가의 설치작품 <아름다운 도구들>.


4전시실 ‘일시적 주권’ 섹션에 나온 장지아 작가의 설치작품 <아름다운 도구들>은 중세기 외설적이라며 발성이 금지됐던 유럽의 여성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성이 올라타고 돌리면서 세월과 욕망, 감각의 흐름을 형상화한 물레들이 원형으로 늘어서서 다른 지역 선주민들의 작품들과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지막 5전시실의 ‘행성의 시간들’에선 대만의 선주민 출신 작가 유마 타루의 설치작품 <천과 같은 혀>가 공중에서 맴을 돌았다. 사라져 가는 선주민의 언어를 모시와 면 등으로 짠 천 설치물의 이미지로 색다르게 표현한 이 작품 앞에서 작가는 나지막이 자신의 모어로 선주민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대만의 선주민 출신 작가 유마 타루의 설치작품 <천과 같은 혀>. 선주민의 언어를 모시와 면 등으로 짠 천 설치물의 이미지로 색다르게 표현한 작품이다.



인어가 유영하는 아마존강 유역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생태적 풍경을 담아낸 리투아니아 출신 작가 에밀리야 슈카르눌리테(스카눌리터)의 단채널 영상 작품. 본전시관 5전시실 ‘행성의 시간’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청류와 탁류가 합류하는 아마존 강 유역의 그윽한 생태적 풍경을 인어가 유영하며 돌고래와 거슬러올라가는 장면으로 담아낸 리투아니아 출신 작가 에밀리아 스카눌리터의 단채널 영상 작품도 잊지 못할 시각적 감흥을 남겼다. 이숙경 감독이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광주 양림동 공원과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펼쳐진 9개 나라의 국가관도 예상 이상으로 수작들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립미술관의 네덜란드 관에서 펼쳐진 지구 온난화에 미온적인 기업과 정부에 대한 모의 재판소 법정의 설치작품과 인간과 동식물이 서로 한몸으로 녹아드는 융화의 미학을 보여주는 양림동 이강하미술관의 캐나다관 이누잇 회화 연작들에 특히 시선들이 쏟아졌다.


본전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작가 리서치의 깊이였다. 이숙경 감독은 테이트에서 아시아 등 제3세계권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리서치 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이번 비엔날레에도 국내 기획자들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정도로 3세계권 선주민 작가들의 전통 문화적 유전자가 엿보이는 도예, 공예, 설치, 영상 등을 풍성하게 가져와 전시주제와 어울리는 맛깔스러운 큐레이션으로 버무려놓았다. 전시장에 작품들을 꽉꽉 채우지 않고 가벽을 최소화하고 쾌적한 동선까지 배려했다.



광주 양림동 이강하미술관의 캐나다 국가관(파빌리온)에 내걸린 이누이트 선주민의 회화 작품. 토끼가 해초를 먹는 모습을 표현한 이 그림은 케노주아크 아셰바크 작가가 1959년에 그렸다.


나무랄 데 없는 전시 내공을 보여줬지만, 튀고 날선 담론을 표출하는 비엔날레가 아니라 뮤지엄 전시의 성격에 충실하다는 것이 결국 한계로 남는다. 이미 답을 정해둔 기획전과 진배 없다. 광주비엔날레의 뮤지엄화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테이트모던 큐레이터였던 제시카 모건이 불을 주제로 선보였던 2014년 비엔날레, 지금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는 기획자인 막시밀리아노 지오니가 만인보를 주제로 맡았던 2012년 비엔날레 또한 현재적 담론이 아닌 역사적 맥락의 미술사 예술사 전시를 만들었다. 지난해 김선정 전 이사장과 극단적인 불화를 빚었던 인도와 터키의 두 소장 여성 기획자가 만든 전회 비엔날레 전시는 생태주의와 풍속사 공예사의 틀거지를 드러내면서 이번 전시와 유사한 구석을 보여준 바 있다. 지난 10년간 관객을 의식해 전위적인 담론주의를 벗어나 세속화한 흐름을 걸어온 것이 광주비엔날레의 길이었다면 지금 시점에서 고급스러운 대형 기획전이나 아트프로젝트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주최 쪽인 광주시와 비엔날레 재단 쪽은 최근 정치적 행보로 더욱 비엔날레의 본령에서 멀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 단색조회화의 대가지만 광주비엔날레의 창설과 연관이 없고 과거 유신정권시절 정권에 부역하는 민족기록화를 그리며 화단권력으로 군림했던 박서보 작가의 예술상 신설과 관련해 광주 미술계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난 것은 예사롭지 않다. 현대미술에서 시대 정신을 진단하고 흐름을 되짚는 원래 비엔날레의 전위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지역 미술인들의 절박한 몸부림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광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고고학 유물인 고대 가나안 점토 인물상에 3D 기술을 활용해 춤추며 율동하게 한 이스라엘 작가 루스 파티르의 영상물.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에 개설된 이스라엘 국가관(파빌리온) 출품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