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27호 박서보의 작업실(7) 안성 한서당-3: 종이 위 작업들의 시작

2026-02-24

ARCHIVE FOCUS⎮27호 박서보의 작업실(7) 안성 한서당-3: 종이 위 작업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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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1년 9월 26일 구로사키 아키라(黒崎彰)와 최명영(崔明永), 서승원(徐承元), 이인화(李仁華)가 대림 한서당 화실(大林 寒栖堂 画室)을 방문하였을 때 이인화(李仁華) 촬영

자료 출처: 박서보 사진자료집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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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1년 9월 11일자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자료 출처: 박서보 편지모음집 N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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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담(鼑談)〕 종이문화(文化)와 조형(造形): 한(韓)·일(日) 종이의 조형전(造形展)에 즈음해서」,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1982. 12. 1.), pp. 8-9.

자료 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15


<일러두기>

일본어 원문은 자료 하단에 별도로 첨부했다. 글은 자료의 원문의 시대적 맥락을 살리기 위해 영어의 한글 발음 등에서 통일되지 않은 부분까지도 최대한 그대로 표기한다.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는 독음으로 표기하였으며,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한글 옆에 소괄호 ( )로 한문을 병기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장에 사용된 기호나 숫자는 현대한국어 문법에 맞추어 교정했다. 대표적으로 외국어 표기 시 사용되는 낫표 「」는 생략, 겹낫표 『』는 의미상 사용에 따라 따옴표 ' ' 로 교정했다. 변경된 명칭이나 번역자 주는 대괄호 [ ]로 표기하고 긴 내용의 경우에는 주석을 달았다.


(2) 1981년 9월 11일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1981. 9. 11

박서보 선생님

오랫동안 격조했습니다만, 그 후로 기운차게 작업에 열중하고 계실 줄 압니다.
금년 봄, 소생이 서울에 방문했을 때에는 매우 신세를 졌습니다. 여기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지난번, 이경성 선생님께서 교토에 방문하셨을 때, 소생도 뵐 기회가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 계획하고 있는 「일·한 종이의 조형」전 건에 대하여,
이 선생님을 위시해 한국 작가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또 한국 작가의, 종이를 상대로 작업하는 모습을 꼭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박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고 들은 “Work on Paper”전의 카탈로그가 이러한 계획의 중요한 베이스가 되고 있으므로
그것들의 내용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때문에 소생이 이번 달 23일부터 28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부산에 23, 24 양일, 그리고 서울에 25, 26, 27, 28일 머무를 예정입니다.
바쁘신 중이라는 것은 알지만, 상기의 건과 관련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선생님 댁이나 홍익대학 쪽으로 연락 드릴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구로사키 아키라

(번역: 임한빛)



(3) 「〔정담(鼑談)〕 종이문화와 조형: 한·일 종이의 조형전에 즈음해서」,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 (1982. 12. 1.), pp. 8-9.


참석  박서보 심문섭 김용익

장소: 국립현대미술관전문위원실

일시: 1982. 11. 17(수) 12시


<한국측>

권영우 김기린 김구림 김용민 김용익 김응기 김장섭 김진석 김창열 문범 박서보 박석원 서승원 송정기 심문섭 윤명로 윤형근 이강소 이건영 이동엽 이상갑 이승조 이승택 정상화 정영렬 정창섭 최명영 최병소 최병찬 하종현 한기주 한영섭 형진식

(이상 33명)

<일본측>1)

호시나 도요미 / 이베 교코 / 가시오 마사지 / 스가 도시오 / 이우환 / 고시미즈 스스무 / 기타야마 요시오 / 나가타니 미쓰시로 / 이누마키 겐지 / 가와구치 다쓰오 / 구로사키 아키라 / 가시하라 에쓰토무 / 나가사키 미치히사 / 다카다 요이치 / 후쿠다 시게오 / 오가와 히로시 / 나가이 가즈마사 / 와키타 아이지로 / 아사쿠라 나오미 / 이다 쇼이치 / 시모타니 지히로 / 고야마 아비토 / 도모토 히사오 / 유하라 가즈오 / 다쓰노 도에코 / 이즈미 시게루 / 가미야 신 / 시나가와 다쿠미 / 도무라 히로시 / 호리우치 마사카즈 / 구리 요지 (이상 31명)


박(朴): 작년 2월2)로 생각되는데, 일본의 판화가인 구로자끼(黑崎 彰)[구로사키 아키라]가 대만에서의 개인전을 끝내고 한국으로 나를 찾아 왔더군요. 구로자끼의 찾아온 목적은 83년도에 경도[교토]에서 국제 종이 회의가 개최되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작가들이 공동으로 종이를 매체로 하는 조형전을 개최했으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를 가지고 이틀동안 토론을 했지요. 내 의견으로는 대단히 좋은 전시가 되지 않을까 하고 동의를 하면서, 가능한 한이면 서울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최되었으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었읍니다. 예산관계는 일본의 국제문화예술진흥회에서 부담하고, 단 작품선정과 일본까지의 운송은 우리들이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지요. 이를 구로자끼가 일본에 가서 구체적으로 논의하도록 했지요. 그러다가 8월3)에 구체안을 갖고 다시 찾아왔어요. 그런데 구로자끼가 이미 작가를 20명 선정해서 왔더군요. 진(珍) 화랑에서 열렸던 「워크 온 페이퍼」전을 근거로 화랑가와 홍대박물관등을 통해 종이를 매체로 해서 제작한 작가를 보고 이를 근거로 했다더군요. 그러나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어요. 우리는 독자적으로 선정할 것이고, 일본의 작가는 일본에서 역시 독자적으로 선정해야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한국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명의 비평가와 2명의 작가, 6명의 선정위원이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최종적으로 33명을 확정지었지요. 선정과정에서 논의의 촛점이 되었던 것은 단순히 종이를 이미지 표현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는 작품은 문제의 밖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읍니다. 결국 워크 온 페이퍼[work on paper]이든 워크위즈 페이퍼[work with paper]든 종이 자체를 들어내는 작품에 중점을 두게된 것이지요. 

심(沈): 전시가 이루어지게 된 구체적인 요소가 우리 나라 전통적인 의식 속의 종이라는 개념이 크게 등장됨과 동시에, 또 오늘날 우리가 하는 종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결실을 가져오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령 70년대 후반 일련의 워크 온 페이퍼전이 종이에 대한 관심을 무르익게 하므로서 오늘과 같은 한국과 일본작가들에 의한 종이에 대한 공통관심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박: 이 전시가 국제종의회의의 일환사업으로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애요. 그것이 서울에서 먼저 개최되게된 또 하나의 요인은, 일본의 국제예술진흥회가 국내적인 사업이 아닌 국제적인 사업에 지원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 서울서 먼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종이국제회의는 전 세계에서 종이를 만드는 사람 또는 종이에 관련된 이론가들이 내년 2월 경도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것은 판넬 디스커션으로, 종이와 현대 조형이란 논제라고 하겠읍니다. 각국이 종이의 특성을 이론적으로도 전개할 뿐 아니라 제작기술자들이 와서 실지 워크샾도 가지게 됩니다. 또 미국에서 종이 조형을 들고 나오기도 합니다. 대체로 80년대부터 미국에서의 조형적 관심가운데 하나로 페이퍼 워크인데, 우리들이 보기에는 거의 종이로서 공작하고 있는, 즉 가볍게 종이로서 무언가 만드는 일들이 예술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편이지요. 

심: 종이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의 경우 드로잉의 개념확대에서 이룩되지 않았나 보아요. 처음 드로잉으로 등장했던 종이는 단순한 표현의 바닥으로서 등장시켰는데 최근엔 종이 자체의 물성(物性)을 들어내자고 하는 경향이 등장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종이를 표현매체로서 등장시키는 해석과 종이의 물성(物性)을 들어낼려는 해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통적인 관념에서인지는 모르나 아직까지 우리는 종이를 대할 때 전달매체로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런 반면, 구미에서는 그것을 물질로서 해석한다, 즉 조형으로서 해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우리의 종이 자체의 조형적 관심도 역수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종이의 확대개념이 캠버스가 갖고 있는 후래임이라는 제약을 벗어나고자 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보아요. 

김(金): 이번 전시에 우리 한국측에서 핵심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작업이 재래의 워크 온 페이퍼가 아니라 워크 위즈 페이퍼쪽이 많이 들어가리라고 예상합니다. 그동안, 현대미술 가운데 많이 유포되어 있는 것으로, 종이뿐 아니라 매체를 하나의 바탕으로 이용한다는, 자기 의지 속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매체의 성격이라든가 물리적 작용을 같이 더불어서 작품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이번 종이 조형전 역시 그런 류의 작품이 많이 나올 것이라 보고, 그런 경향이 돋보일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박: 이번 종이회의에 출품될 미국쪽의 종이를 매체로한 조형적 작업들에 비해 본다면 우리들이 내놓을 작품들은 어느 의미로 보수적이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 하는 방법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이냐 하면 그렇게는 보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선 일본측 작가 선정에도 다소 의문이 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워크 페이퍼라도 비교적 종이 자체를 살리는 표현 쪽으로 작가 구성을 한 데 비해서 일본 쪽에선 비평가 한 사람이 5인을 추천해서 모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되느냐 하면, 작품 경향으로 보아서 종이는 단순한 캠버스 대용으로 사용했다, 즉 종이를 소재로서 사용한 경향이 강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작가선정에 있어서 이런 문제를 처음부터 보완할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결과가 기대할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김: 종이를 일상문화 속에서 깊이 관련지워서 해석해온 것은 서양보다는 어떤 의미에선 동양쪽이 더 비중이 있지 않는가 생각돼요. 서양은 그림이라면 우선 캠버스를 사용해 왔는데, 우리는 동양화나 서예가 모두 종이를 사용해온 것이지요. 종이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동양쪽이 높은 편이지요. 그러나 종이 자체의 어떤 특성이나 조형적 관심이 들어난 것이기 보다는 단순히 하나의 전달매체로서 사용되었을 뿐이다 라는 것이지요. 서양에서도 똑같은 해석을 가졌던 것 같애요. 종이 위에 스켓치를 한다 뎃상을 한다 하는......  

박: 서양은 다양한 종이가 나올 것이고 일본은 화지(和紙)[와시, わし]를 사용할 것인데, 우리는 한지를 물론 사용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지라는 개념은 한국(韓国)의 종이라는 한지가 아닙니다. 요즈음 동양화(東洋画)를 한국화라고 하는 국가주의적 발상하고 거의 같은 의미에서 나온 한지(韓紙)라는 것은 제가 보기엔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지는 찰한 자 한지(寒紙)라는 것입니다. 겨울에 뜨는 종이이기 때문에 한지(寒紙)라는 것이지요. 아까 물성(物性)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우선 서양종이 하고 근본적으로 한지가 다른 것은 자연관의 해석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아요. 서양종이라는 것은 그 위에 오일 칼라나 수채를 하거나 간에 종이가 신체를 내뱉어 주지요. 그런데 일본의 화지(和紙)까지 포함해서 한지(寒紙)는 전부 흡수해서 신체를 가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본의 화지(和紙)와 한국의 한지(寒紙)와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어기에 내 자신도 해석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사실 화지(和紙)와 한지(寒紙)가 별 차이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인데 굳이 그것을 구별지운다면 일본은 굉장히 세련된 기술, 즉 철저히 정리한 경향으로 흘렀고, 우리는 정리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심: 화지(和紙)와 한지(寒紙)가 비슷하다는 것은 제작기술의 시스템이 비슷한데서 오는 것인데, 사실 일본의 종이는 한국에서 전래된 것이지요. 단지 한국은 한지의 수용도가 점차 줄어들어 사양길로 가고 있는 반면, 일본은 여러 가지 종이 문화의 층이 두텁기 때문에 현대적인 기술 방법의 종이와 같이 재래의 전통적인 기술방법도 공존하고 있는 셈이지요. 

박: 구로자끼 이야기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딱종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재래식 종이공장을 몇 군데 찾아보았는데, 역시 우리의 종이문화가 발전할려면 작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그만큼 종이 문화가 발전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종이 메이커와 작가와의 깊은 관련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보아요. 일본에서는 어느 작가가 있으면 이 작가의 종이를 제작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같은 마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자기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독자적 해석의 종이가 생산된다는 것이지요.

심: 딱종이를 보고 있으면 내 작업과 상당히 통한다는 것을 느껴요. 우리나라 현대미술과도 어느 면 상당히 통한다고 보아요. 딱지는 완성도가 굉장히 낮은 종이예요. 마치 실패한 종이로 보여요. 그런데 그 제작과정을 보니까 극히 완성도가 높은 시스템을 거치고 있어요. 그런데 딱껍질을 혼합하므로서 오히려 높은 완성도를 감출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실패한 종이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를 남기는 여유라고 할까요. 바로 이 점이 현대작가들의 작업과 상당히 통한다는 것입니다. 종이 자체로서 이야기시키고 싶었던 우리들 선조의 예지가 아닌가 보아요. 종이가 글씨를 쓰는 바탕의 매재가 아니라 종이 그 자체라 들어나는..., 그 시절에 이미 워크 위즈 페이트[페이퍼]를 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박: 최근 작가들 사이에 전통적인 제작방법의 한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어요. 이것은 좋은 경향이라고 보아요. 그것은 우리가 근대화하면서 의도적으로 내버렸던 우리 고유의 방법에 다시 접근한다는 것이지요. 거기서 우리의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김: 워크 온 페이퍼에서 워크 위즈 페이프로 넘어오는 과정, 그러니까 워크 온 페이어에서 워크 위즈 페이프를 의식하게 된 것이 언제쯤인가 하는 것은 대체로 70년대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재료에 대한 적극적인 체험의 자연적인 확대가 아닌가 보아요. 즉 재료의 물성(物性)을 더불어 나타내고자하는 의식의 확대가 워크 위즈 페이프를 유도한 것이다란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워크 위즈 페이프는 70년대 미학과 밀착된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의 한 연장에서 이번 전시를 본다면, 역시 물성((物性)을 들어내는 쪽이 많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심: 우리나라 작가들이 다루는 재료가 어떻게 보면 자연과 친화력이 있는 것이 많아요. 종이 역시 그런 점으로 볼 수 있어요. 표현작용 내지 표현태가 변화무쌍하다는데도 종이의 신선미가 나타나지요. 재료의 자변성 내지 탄성이라는 물성의 변화 때문에 작가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애요. 

접는다, 찢는다, 바른다는 등 표현양태를 많이 가질 수 있는 재료기 때문에, 70년대부터 서서히 사용도가 높아진 것이 아닌가 보아요. 

김: 한지의 가변성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것 같애요. 켄트지같은 종이는 한번 꾸기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한지는 휴지로서도 버릴 수 없는 종이에요. 다시 모아서 물에 풀어서 또 다른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정말 가변성이 풍부한것 같애요. 오래 묶은 한지는 마치 천 같이 느껴져요. 한지는 두고 두고 쓰는 종이 같애요. 

심: 한지는 서양종이처럼 하나의 면재의 해석보다는 선재가 같은 해석까지는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돼요. 선재뿐 아니라 양재로서도 그 사용도가 확대되지요.

김: 매체를 온 워크로가 아니라 더불어 하는 작업의 태도는 동양적인 자연관과 결부되어서 많이 논의되어 왔는데, 제 생각으로는 재료의 한계를 극복할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친화력 내지 합일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 같애요. 이점이 현대작가들이 의식해야될 것이 아닌가 보아요. 말하자면 안일한 자연관 속에 빠지는, 소극적인 해석보다, 보다 차원높은 조형관을 유도해가는 방법 정신이 요구된다고 할까요.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

1982. 12. 13~27

국립현대미술관 서관



[자료 설명]

ARCHIVE FOCUS 27, 28호는 안성 한서당이 박서보의 주된 작업 공간이던 시기에 탄생한 한지묘법에 대해 다루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아카이브 자료들을 통해 박서보가 한지, 보다 구체적으로 종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 볼 것이다.

1967년부터 캔버스에 유채 물감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는 연필묘법을 작업해오던 작가는 1980년대부터는 한지를 주된 매체로 사용하는 한지묘법을 시작한다. 박서보가 한지묘법을 시작했다고 밝힌 연도는 1982년, 한국미술협회의 중직에서 벗어나 안성 작업실에서 자신의 예술과 작품에 집중하기 시작한 지 두 해 남짓 된 시점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1983년 교토에서 진행된 '83 국제종이회의(IPC '83)(1983. 2. 16. - 2. 21.)이지만, 작가는 매체로서 종이를 탐구하기 시작한 시기를 그 한 해 전인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전》(국립현대미술관, 1982. 12. 13. - 12. 27., 이후 《현대·종이의 조형전》)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언술했다.4)

이 전시 기획을 제안한 이가 일본의 판화가 구로사키 아키라(黒崎彰, 1937-2019)(첫 번째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임은 알려져 있다.5) 작가가 한서당과 서울의 집을 오가며 작업에 몰두한 지 일 년 여가 지난 1981년 봄, 박서보에게 구로사키 아키라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도착한다.6) 구로사키 아키라는 일본 시로타화랑의 대표 시로타 사다오(白田貞夫)로부터 박서보를 소개 받았다고 밝히며, 자신이 한국에 방문할 때 국내 판화계의 동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도록 박서보가 도와주기를 청한다. 구로사키 아키라는 일본의 전통 판화인 우키요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화를 통해 일본 현대 판화계를 혁신하고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평생에 걸쳐 판화에 대한 여러 저술을 남겼는데, 이 시기 그는 세계의 판화 기법에 대한 책을 출간하며 한국에 대한 내용을 싣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특히 국내의 목판화 작품과 기법에 대해 배우고자 했다.7) 구로사키 아키라는 실제로 1981년 3월 말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박서보와 시간을 보냈고 이후 오랜 기간 작가와 소식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8)

이 방문에서 몇 개월 후인 1981년 9월, 구로사키 아키라는 박서보에게 하나의 전시 기획을 제안한다. 그 내용을 1981년 9월 11일자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두 번째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로사키의 제안은 1983년 교토에서 예정되어 있던 대규모 국제 행사인 '83 국제종이회의(國際紙会議, IPC '83)(1983. 2. 16. - 2. 21.)에 맞추어 한국과 일본에서 종이 관련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모아 양국에서 전시로 선보이자는 것이었다. 구로사키 아키라가 제안하고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박서보가 주축이 되어 준비한 기획이 1982년 서울에서 개최된 《현대·종이의 조형전》이었다. 《현대·종이의 조형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구로사키 아키라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이 본 호의 첫 번째 자료 사진이다. 1981년 9월 26일자 안성 한서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화가 최명영, 구로사키 아키라, 박서보, 그리고 서승원이 등장한다. 구로사키 아키라와 《현대·종이의 조형전》을 논의하기 위한 이 모임에는 사진에 찍힌 이들 외에도 이 시기 몇 년간 일본에서 판화를 공부하며 활동하고 귀국한 이인화가 함께 했다.9)

81년 9월의 편지는 박서보의 한지묘법이 탄생하게 된 경로를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새 단서를 제시한다. 구로사키 아키라가 82년 전시의 기획 근거로 언급한 “Work on Paper” 전의 전시 도록이 그것이다. 논의된 1979년 《Work on Paper》전10)은 70년대 후반 한국에서  《Work on Paper(워크 온 페이퍼)》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일련의 전시 가운데 서울 진화랑에서 개최된 두 번째 것이다. 박서보는 1978년(견지화랑)과 1979년(진화랑)에서의 ‘종이 위의 작업’ 전시에 모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구로사키의 편지에 따르면 그 기획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비평가 이일이 쓴 79년 진화랑 전시 도록 서문에서는 79년 전시와 작가들의 작업 방향성이 드러난다. 글에서 이일은 현대 미술에서 “메디아[media, 매체]의 문제가 작품의 내용 그 자체가 되고 또 작품의 방법론 그 자체와 일체가 되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또한 “캔버스 또는 기타의 ‘대작(大作)’을 단순히 딴 메디아에로 하는데 그치는 ‘종이 위의 작업’”은 무의미하며 “종이는 그 특유의 특성과 더불어 오히려 작가의 손을 이끄는 새로운 방법과 기법의 촉발제가 되어야”한다고 종용했다. 유사한 관점이 한해 전 1978년 견지화랑 전시를 평한 신문 기사11)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이 시기 작가들의 작업에서 당대 한국 미술계가 감지하고 기대하던 지향점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일은 또한 진화랑 전시가 1978년의 견지화랑 전시에서 중심이 된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전시 작가들 또한 대동소이하다고 서술했다. 실제로 진화랑 전시 참여 작가 16인 가운데에는 한 해 전 견지화랑 전시에 참여했던 11인이 포함되어 있어 1979년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1978년 견지화랑에서의 전시 기획에서도 박서보의 역할을 가늠해보게 한다.12)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종이의 조형전》에는 78년과 79년 전시에 참여한 작가 30인 가운데 20인이 포함되어 있었다.13) 이렇듯 70년대 후반 국내 미술계에서 실현된 종이를 주제로 한 작업과 전시들은 박서보를 포함한 한국 작가들 사이에서 예술 작업의 매체로서 종이에 대한 고려과 종이의 물질적 특성에 대한 탐색이 구로사키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내재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70년대 후반 종이 매체에 대한 한국 작가들의 주체적인 탐구 과정은 이번 호 세 번째 자료인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에서도 잘 드러난다.14)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82년의 전시를 즈음해 『현대미술관회뉴스』에 참여 작가들이 참여한 두 페이지 가량의 대담을 수록했다. 대담에서 박서보는 심문섭, 김용익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문위원실에 모여 《현대·종이의 조형전》 당시 작가 선정 과정과 출품된 작품, 그리고 종이라는 주제에 관련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나눈다. 박서보는 기획 단계에 구로사키가 제시한 한국 작가 목록을 거부하고 국내 선정위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작가들을 자체적으로 결정했다는 서술로 대담의 포문을 연다. 그는 전시의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그전 해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부임한 이경성과 함께 82년 전시에 참여하게 될 한국 작가의 선정에 깊이 관여했는데,15) 이렇게 기틀이 마련된 전시는 일본에서보다 몇 달 이른 1982년 12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에서 먼저 진행된 후 그 다음 해 일본으로 넘어가 여러 도시를 순회하게 된다.16) 박서보는 전시 기획 과정에서 기존의 작업들을 살펴 주제에 적합한 작가들을 골라내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의 기획에 응하는 작업을 작가들이 시도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밝힌다.17) 그가 강조한 기획의 방향성은 “이미지를 받치는 종이” 작품이 아닌 “인간에 의해서 종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말하도록”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박서보는 대담에서 종이가 이미지 표현의 장소로 사용되는 “워크 온 페이퍼(work on paper)” 작업과 “워크 위즈 페이퍼(work with paper)” 작업들을 개념적으로 구분하여 정의한다. 그리고 전시 기획에서 중점을 두고 탐구하고자 한 주제가 후자의, 종이의 물성을 드러내는 작업이었음을 명확히 했다. 전시에 참여한 심문섭과 김용익 또한 종이를 다루는 두 가지 작업 방식의 차이를 강조하고 특히 매체의 물성을 탐색하는 태도가 당시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공유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담에 참여한 이들은 83년에 예정되어 있었던 국제종이회의와 당시 자신의 종이에 관련된 작업들을 70년대 국내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증가했던 종이라는 재료, 혹은 물질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과 연결해 설명하고 있었다. 아카이브 자료들은 김용익이 “70년대 미학”으로 명명하기도 한 이같은 종이와 그 물질성에 대한 관심이 최소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미술계에서 조응하는 흐름이자 대화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ARCHIVE FOCUS 다음 호에서는 자료에서 발견된 단서들을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 미국 미술계를 넘나들던 종이를 탐구하는 작업들을 추적하며 박서보의 한지묘법을 세계 현대미술과 ‘종이 위의 작업’이라는 확장된 맥락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글 최윤정

일본어 번역 및 감수, 이미지 임한빛



<주석>

1) 글에서 다루어지는 전시, 《현대(現代)·종이의 조형(造形): <한국(韓國)과 일본(日本)>》(국립현대미술관, 1982. 12. 13. - 12. 27.)의 전시 도록에 인쇄된 작가 목록에서는 이 목록의 작가들에서 1명이 빠져 있다. 제외된 작가는 호리우치 마사카즈이다.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전』, 전시 도록(국립현대미술관, 1982). 82년 전시 참여 작가 목록은 각주 13번에 정리해두었다.

2) 박서보가 구로사키 아키라에게 처음 받았던 편지에 따르면 구로사키 아키라의 한국 방문 시기는 1981년 3월이다. 1981년 4월 1일자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박서보 편지모음집 No.7)

3) 이 시기 편지 기록에 따르면 구로자키 아키라의 두 번째 방문은 1981년 9월에 이루어졌다. 1981년 9월 11일자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박서보 편지모음집 No.7)

4) 작가는 한지를 이전부터 구입하기는 했지만 종이를 예술 매체로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된 계기는 구로사키 아키라가 제안한 1982년 《현대·종이의 조형전》이라고 설명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편집,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2014), pp. 226-226.

5) 기혜경, 「그리기에 길을 묻다・박서보의 묘법」,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도록(국립현대미술관, 2019), pp. 66-77 중 pp. 73-74.

6) 1981년 4월 20일자 소인의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1981년 4월 23일 도착했다 적은 박서보 손글씨 기록이 있으나, 편지 내용에서 81년 3월 말 예정된 서울 방문을 언급하고 있어 실제로는 3월 초중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7) 81년 전후 구로사키 아키라의 활동과 관심사는 각주 6의 편지에서 서술되어 있다. 판화가로서 구로사키 아키라의 삶과 예술 전반에 대한 정보는 다음 자료들을 참고했다. Hollis Goodall, LACMA 홈페이지 작가 소개 (2020년 작성), https://collections.lacma.org/node/153433 (2025년 9월 11일 접속); 김승연, 신지연, 「세계 현대 판화속의 일본 현대판화의 국제성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37권(2014), pp. 413-437.

8) 구로사키 아키라의 첫 한국 방문에 대해서는 1981년 4월 1일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서보와 구로사키 아키라의 관계는 두 작가 간에 오간 1981년의 3점, 1982년의 2점의 편지를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79년에서 1981년 사이의 사진들이 담겨 있는 박서보 사진모음집 No.4에서는 1981년경 구로사키 아키라와 박서보가 함께 찍힌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된다. 박서보의 증빙자료집에 스크랩 되어 있는 2000년 Rikuyosha에서 출간한 구로사키 아키라의 미술교육서 『〔지금 바로 도움되는 미술교습 5〕 종이의 조형: 종이 제작부터 작품 제작까지(すぐ役立つ美術レッスン5: 紙の造形-紙つくりから 作品制作まで)』에서 구로사키 아키라는 한지를 다루는 작가로 박서보를 소개하고 있어 두 작가 간의 직간접적 교류가 2000년대까지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9) 박서보는 수기로 9월 26일자 사진의 촬영자가 이인화임을 밝혔다. 구로사키 아키라와의 만남을 기록한 이 시기의 다른 사진들에서도 이인화가 등장한다. 이인화는 1977년부터 81년까지 일본 오사카대학교와 다마대학교에서 판화를 익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인화 <점에서 공간으로>(1987) 작품 설명 페이지. 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Page.do?museumId=&wrkinfoSeqno=2634&artistnm=이인화 a&wrkMngNo=02634&pageOrder=Wrkinfo_Seqno

10) 이번 호 세 번째 자료인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의 대담에서 박서보는 구로사키 아키라가 살펴 본 자료가 진화랑 전시 도록이라고 명시했다. 「〔정담(鼑談)〕 종이문화와 조형: 한·일 종이의 조형전에 즈음해서」,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 (1982. 12. 1.), pp. 8-9.

11) 「[문화산책] 공동주제전 .... 『종이 위의 작업』」, 『중앙일보』(1978년 9월 10일자). 전문은 중앙일보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92295

12) 이일, 「종이위의 작업에 부쳐」, 『Work on Paper전 전시 리플릿』(진화랑, 1979. 7). 견지화랑 전시 리플렛과 진화랑 전시 리플렛에 인쇄된 참여 작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견지화랑 참여 작가: 하종현, 최병소, 최명영, 조용익, 정창섭, 정영렬, 진옥선, 윤형근, 윤명로, 이향미, 이승조, 이동엽, 이두식, 이강소, 심문섭, 서승원, 박서보, 문승근, 김태호, 김창열, 김진석, 김용익, 권영우, 곽덕준. 견지화랑 《종이 위의 작업(Work on Paper)》 전시 리플릿(박서보 증빙자료집 No.11). 진화랑 참여 작가: 권영우, 김기린, 김종근, 김창열, 김홍석, 박서보, 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이승조, 이우환, 윤형근, 정상화, 정영렬, 최대섭, 최명영, 최병소. 진화랑 《Work on Paper(Travaux  sur papier)》 전시 리플릿. 두 전시에 모두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을 굵은 글씨로 표기했다. 견지화랑 전시의 한글 제목은 함께 보관된 1978년 9월 10일자 『중앙일보』 스크랩 기사를 참조했다. 「[문화산책] 공동주제전 .... 『종이 위의 작업』」, 위의 자료. 진화랑 전시의 프랑스어 제목은 리플렛에 인쇄된 버전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두 리플렛 모두 박서보 증빙자료집 No.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종이의 조형전》 전시 도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참여 작가 목록은 다음과 같다. 아사쿠라 나오미, 이베 교코, 김구림, 이승조, 송정기, 최병찬, 이다 쇼이치, 김창열, 이승택, 스가 도시오, 최병소, 이누마키 겐지, 김용익, 이우환, 서승원, 최명영, 이즈미 시게루, 기타야마 요시오, 문범, 다카다 요이치, 정창섭, 정영렬, 고시미즈 스스무, 나가이 가즈마사, 다쓰노 도에코, 정상화, 가미야 신, 고야마 아비토, 나가사키 미치히사, 도무라 히로시, 도모토 히사오, 가시오 마사지, 구리 요지, 나가타니 미쓰시로, 와키타 아이지로, 후쿠다 시게오, 가시하라 에쓰토무, 구로사키 아키라, 오가와 히로시, 윤명로, 하종현, 가와구치 다쓰오, 권영우, 박서보, 유하라 가즈오, 한기주, 김응기, 이동엽, 박석원, 윤형근, 한영섭, 김기린, 이건영, 심문섭, 호시나 도요미, 김장섭, 이강소, 시모타니 지히로, 형진식, 김진석, 이상갑, 시나가와 다쿠미. (견지화랑 및 진화랑 참여 한국 작가를 굵은 글씨로 표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참여 작가 수는 한국 31명, 일본 30명으로 박서보 증빙자료집에 보관된 도록에 인쇄된 것보다 일본 작가의 수가 1명 적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 전시 정보 페이지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10000000&exhId=200904050002455

14) 「〔정담〕 종이문화와 조형: 한·일 종이의 조형전에 즈음해서」, 각주 10번과 동일.

15) 2014년의 구술채록에서 박서보는 현대미술 작가 선정의 경험이 없는 이경성과의 논의 하에 자신이 작가 선정을 책임졌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편집,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2014), p. 226.

16) 이 전시는 1982년에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에서 첫 선을 보이고(1982. 12. 13. - 1982. 12. 27.) 일본으로 이동해 1983년에는 《현대·종이의 조형: <일본과 한국>전》이라는 제목으로 교토시쿄세라미술관(1983. 2. 22. - 1983. 3. 6.), 사이타마현립미술관(1983. 4. 2. - 1983. 5. 8.), 그리고 구마모토전통공예관(1983. 5. 26. - 1983. 6. 7.)를 순회했다. 1982년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전》의 개최 기관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으나,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본 글에서는 시기별 구분을 위해 당시 전시 장소를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으로 표기한다.

17) 구술 인터뷰에서 박서보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획 방향에 맞는 작업을 선보일 수 있도록 전시 작가들과 스터디를 진행했다고도 서술했다. 『구술채록연구』, 위와 동일.



참고자료

1981년 4월 1일자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박서보 편지모음집 No.7)

1981년 4월 20일자 소인의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박서보 편지모음집 No.7)

1981년 9월 11일자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박서보 편지모음집 No.7)

「[문화산책] 공동주제전 .... 『종이 위의 작업(作業)』」, 『중앙일보』(1978년 9월 10일자)

「〔정담(鼑談)〕 종이문화(文化)와 조형(造形): 한(韓)·일(日) 종이의 조형전(造形展)에 즈음해서」,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 (1982. 12. 1.), pp. 8-9.

『Work on Paper전 전시 리플릿』(견지화랑, 1978. 9).

이일, 「종이위의 작업(作業)에 부쳐」, 『Work on Paper전 전시 리플릿』(진화랑, 1979. 7).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전』, 전시 도록(국립현대미술관, 1982. 12. 13. - 12. 2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편집,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2014).

기혜경, 「그리기에 길을 묻다・박서보의 묘법」,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도록(국립현대미술관, 2019), pp. 66-77 중 pp. 73-74.

김승연, 신지연, 「세계 현대 판화속의 일본 현대판화의 국제성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37권(2014), pp. 413-437.

국립현대미술관 이인화 <점에서 공간으로>(1987) 작품 설명 페이지. 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Page.do?museumId=&wrkinfoSeqno=2634&artistnm=이인화 a&wrkMngNo=02634&pageOrder=Wrkinfo_Seqno (2026년 2월 23일 접속)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 전시 정보 페이지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10000000&exhId=200904050002455 (2026년 2월 19일 접속)

Hollis Goodall, LACMA 홈페이지 작가 소개 (2020년 작성), https://collections.lacma.org/node/153433 (2025년 9월 11일 접속)



[원문]


(2) 1981년 9월 11일 구로사키 아키라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SEOUL 特別市 麻浦区 

合井洞 369-14

朴栖甫樣

大韓民國

京都市北区紫竹下園生町19

黒崎彰

1981. 9. 11

朴栖甫先生

ご無沙汰しておりますが、その後お元気でお仕事にはげんでおられる事と存じます。
本年春、小生がSeoulを訪ねました時には大変お世話になりました。こゝにあらためてお礼申し上げます。
さて、先般、李慶成先生が京都を訪ねられました際、小生もお目にかかることができお話を交わしましたので、すでにご存知かと思いますが、日本で計画しております「日·韓紙の造形」展の件につき、李先生をはじめ韓国作家のみなさまとお話したく思っています。また韓国作家の紙に対するお仕事ぶりをぜひともくわしく知りたいものです。
朴先生が中心になって作られたと闻いております“Work on Paper”展のカタログがこのような計画の重要なBaseになっておりますので それらの內容についてもお闻かせいただきたく思いますが、そのため小生は今月23日より28日まで韓国を訪れ、
プサンに23, 24兩日、そしてソウルに25, 26, 27, 28日と滯在の予定です。
お忙しい中とは存じますが、上記の件につきお会いできる機会があれば幸いです。
ソウル到着次㐧お宅の方か弘益大学に御連絡差し上げますので良ろしくおねがい申し上げます。

黒崎彰



(3) 「〔정담(鼑談)〕 종이문화(文化)와 조형(造形): 한(韓)·일(日) 종이의 조형전(造形展)에 즈음해서」, 『현대미술관회뉴스』 22호 (1982. 12. 1.), pp. 8-9.


(일본인 참여 작가 이름 원문)

保科豊己[巳],伊部京子,橿尾正次,須賀卯夫,李禹焕,小清水漸,北山善夫,長谷光城,狗巻賢二,河口龍夫,黑崎 彰,柏原 えつとむ,永崎通久,高田洋一,福田繁雄,尾川 宏,永井一正,脇田愛二郎,朝倉直巳,井田照一,下谷千尋,小山愛人,
堂本尚郎,湯原如夫,辰野登恵子,泉 茂,上矢津,品川 工,户村 浩,堀内正和,久里洋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