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4호 1964년 박서보 교실 사진과 급훈

2024-01-23

ARCHIVE FOCUS⎮4호 1964년 박서보 교실 사진과 급훈

(1) 1964년 박서보 교실 사진

자료 출처: 박서보 사진모음집 No.1(1935~1971)


(2)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에 실린 관련 일화

자료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편집,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 pp. 248-250.


[원문]


(1) 1964년 박서보 교실 사진


사진 부착된 종이 뒷면

1964년: 홍대미술학부회화과

박서보 교실에서

폐물완구, 각종공산품의 폐물들을 고물상에서 사다가 교실 벽에 걸거나 공중 천정에 매달이 내리곤 했다.

학생들이 꾸며놓은 구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속에서 자유롭께 대상물을 선택하여 화면을 구성케하는 교육을 시켰다.


(2)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에 실린 관련 일화


11) 미대 학장시절, 학생시위 관련 일화들 DVD 6 01:24:28~01:31:33

정: 동양의 자연관이라는 것에서 선생님이 민중미술에 대해 비판적인 토대가 될 수 있겠네요. 근데 미대 학장시절에 그, 홍대에서 시위가 많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을 위해 많이 애를 쓰신 거, 쓰셨다고도, 들었습니다.

박: 아니, 예를 들자면, 학생들이 말이죠, 나는 학생들 보고, 너희들이 데모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합니다. 데모 하고 싶으면 하라는 거야. 그 심정은 이해한다. 그런데 너희들이 잡혀갈 짓은 하지 말라. 그러면 우리들 맘 아프고, 너희들 꺼내느라 죽을 지경이야 이놈들아. 그리구 반드시 공부는 하라. 공부는 하고 가 데모하라. 내가, 내 얘기는 그거거든? 하고 싶으면 하라. 그것까진 내가 말리진 않는다. 그런데 위험한데까진 가지 말아다오 하는 거구. 그런데 이 녀석들은 뭐, 툭하면 수업거부야! {하하} 그래, 수업거부 좋다. 그러면, 알겠다. 그러면, 우리도 너희 같은 얘들은 공부 못시키겠다. 그래 가지구 전- 학부모에게, 너희 당신네 자식들이 공부하라고 하니까 수업 거부한다 이따위니 나는 그런 제자를 우리는 못 가리키겠다. 우리가 편지를 했어. 그러니까 부모들이 난리가 나지, 이 자식들. 공부 하라고 없는 돈에 서울 보냈더니 이따위 짓이나 한다구. 역으로 애들이 당했지. 그거를 강력히 우겨 가지구, 내가 학장 때 보냈습니다.

또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은. 나를, 얼마나 얘들이 데모가 심한지, 각 학장들을, 이거 집기를 가져간다는 거야. 그래 버티고 있으면 그 함께 묶어서 운동장에 학장까지 버려놔. 그렇게까지 한다구. 얘들이. 총학 위에서, 너희 학장, 미대 학장, 목소리 큰 학장한테 하라구 그러니까, 하다하다 이제 내 학장실 앞에서 와샤와샤하는 거야. 그러더니 대표가 들어와. “야, 집기 가질러 왔냐?” {(웃음)} 이거 티 테이블 큰 거며 회의하는 거, 이거 내 개인 거다. 개인 건 절대 건드리지 말라. 이 테이블 이것은 학교거야, 이 전화는 학교거야, 전화테이블 저거 학교거야. 저기 저 책장 학교거야. 그건 가지고 내려가도 되지만 다른 거 손 대면 나한테 죽는 줄 알아, 그랬어. {(웃음)} 그랬어요. 그랬더니 아야들이 오히려 못 가져가더라구. 저들이 나한테 오히려 패했지. 그러니까 그, 상황판단. 나는 예술이라는 건요, 내가 마지막으로 혹시, 만난 이 젊은 친구들이나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책 백번 읽는다구 남의 소리 듣구선 놀아나지 말라는 거야. 책의 그런 지식이 아니라,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라는 거야. 그리구, 그것이 꽃피우게 할 수 있는 ‘열정’이 얼마나 저기하나, 식지 않는 열정이 얼마나 갖고 있느냐.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열정만 있으면 된다는 거야.

정: 그러한 맥락에서 선생님이 학교 작업실에 뭐, 스승의 작업을 닮지 마라, 친구의 작업…

박: 세 가지. {예} 교실제 때. 63년인가? 내가 내놓은 것 중에 그, 절대로 역사에 부채를 지지 말라. 그 어떤, 남의 걸 답습하지 말라는 얘기지. 두 번째, 네 선생을 닮지 말라. 날 닮으면 그거 교육 실패한 거지. 날 닮으면 어떻게 해요. 나는 나 시대의 산물이지. 그러니까 세 번째는 너희들끼리 닮지 말라. 교실에 보면 학년에 반드시, 고 반에 뛰어난 놈이 하나 있어. 그러면 걔를 전부 다 닮아가. 그래 가지구 써 붙였더니. 그 당시에 학장이. 그 당시에는 총장이 아니었을 때에요. 홍대학장이, 날, 그걸 보더니, 노발대발 하구선, 날 차 한 잔 하자구래. 그래 학장실에 갔더니 그걸 따지는 거야. ‘아니 선생을 안 닮고 누구?’ 정신 나간 얘기 하지 말라구. 그 사람은 수학자거든? {하하} 내가 조목조목 따졌거든. 그래 나중엔 자기가 미안해가지구. 그 학장님은 수학하시는 분이라 그런 말씀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공식을 닮아갈 필요가 없는 거라구. 자기가 스스로 공식을 만들어내갸 하는 거지. 남의 공식 가지고 되풀이하는 그런 거, 그 수학세계는 있을 테지만 예술에선 창조하는 거라구. 그래 쥐어박아 버렸지.

정: 그 모토는 지금도 젊은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죠?

박: 물론. 물론이지. 그러니까 요즘 보세요, 어디 일본 얘들이, 한국에서 왜색풍을 내가 단색화 운동을 하면서 몰아냈거든? {예} 그래 가지구 일본에서 그, 동경예대출신이 홍대 와서 석사하고 그런 얘가 있어요. 걔가 지금 동경 돌아가가지구 굉장히 중요하게 저기해가지구, 한국에서의 경험이. 그래 지금 동경예대 교수가 됐어요. 그리구, 걔 말고도 많은 얘들이, 일본의 오노라는 얘는, 그 이,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객원큐레이터로 와서, 걔 십년 가까이 있었어요. 한국말을 아주- 본격적으로 공부해가지구 한국 얘들하고 대포집에서 논쟁을 하는 거야, 예술론 논쟁. 이런 얘들이며, 또 오사카 예술대학의 교수로서 한국에 와서 저기, 공부 해야겠다고, 한국 와서 공부 저기, 홍대에두 와서 객원교수로 있다 가구 그런 얘들도 많습니다. 그럴 만큼 한국단색화가 그 당시에 일본에 끼친 영향이 엄청 큽니다. 그런데 요즘 보세요, 일본의 만화 이쁘게 그린, 만화 얼굴. 꼭 만화 같은 그림. 그거 다 일본서 나온 거거든? 지금 젊은 애들 전부 그거 하고 앉았잖아? {(웃음)} 그건 손끝 재주에요.


<표기원칙>

- 띄어쓰기나 오타는 원문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인 경우에는 대괄호 [ ]에 의미하는 바를 추정해 병기한다.



[자료 설명]

박서보 아카이브에서 보존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인 박서보 사진모음집은 1935년부터 2023년까지 박서보가 수집해 온 인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4호에서는 1964년 박서보가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의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시기 박서보 교실의 사진을 다룬다.

1962년부터 홍대 강단에 서면서 박서보는 다양한 교육적 혁신을 시도했다. 사진 속 박서보 교실 문 앞에는 붉게 칠한 패널 가벽이 세워져 있으며, 그 전면에 다리미, 전등, 시계, 가죽 장갑, 낡은 아기 인형, 전구, 곤충 표본, 핸드백, 소화전 등의 다양한 기물이 줄에 매달려 늘어져 있거나 벽에 붙어 있다. 박서보는 학생들이 기존에 제시된 구도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성해 볼 수 있도록 교실 문 앞에 가벽을 설치하고 여러 사물을 배치해두었다고 사진 뒷면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박서보는 학생들이 가져야 할 세 가지 태도를 ‘급훈’으로 정리해 가벽에 붙여 놓았다. 박서보 교실 급훈을 적은 종이는 보존되어 있지 않으나, 그 내용과 관련 일화, 이에 대한 박서보의 생각을 『2014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238 박서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술채록을 통해서 살펴본 박서보가 강조했던 세 가지 급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에 부채를 지지 말라.

둘째, 네 선생을 닮지 말라.

셋째, 서로를 닮지 말라.


박서보는 시작하는 예술가들이 기존의 미술도, 학교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도, 그리고 주변의 뛰어난 다른 동료도 닮으려 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그것을 “꽃피우게 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의 공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 주관하여 작년 20주년을 맞은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를 통해 작성된 채록연구의 원문과 인터뷰 영상은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에 공개되어 있으며, 박서보 아카이브에는 미출간된 연구집 제본과 영상이 소장되어 있다.


글 최윤정

이미지 임한빛


온라인열람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 구술채록컬렉션

박서보 페이지  https://www.daarts.or.kr/handle/11080/19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