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7호 1961년 박서보가 본 파리

2024-02-15

ARCHIVE FOCUS⎮7호 1961. 2. 5. 박서보가 본 파리

(1) 1961년 파리에서 박서보 사진

자료 출처: 박서보 사진모음집 No.1(1935~1971)



(2) 박서보, <파리 풍경> 습작, 1961년 추정, 종이에 유화, 박서보재단 소장



(3) 박서보, 「쎄느강안을 좌·우로: 최근의 파리 화단」, 『동아일보』(1961년 12월 30일)

자료 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1(1954~1961)


[원문]


(3) 박서보, 「쎄느 강안을 좌·우로: 최근의 파리 화단」, 『동아일보』(1961년 12월 30일)

파리의 특기할 만한 사실의 하나, 그것은 추상예술이 실험 단계를 넘어 오래 전부터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아우성이다. 어떤 이는 이 포화상태에 들어선 추상회화의 위기가 구상회화의 새로운 대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에 있어 파리화단 뿐만 아니라 오늘의 전체 추상화단이 질식 상태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러한 위기는 추상의 아카데미즘화와 '현실이라는 것'이 또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이 포화상태가 역사의 정당한 복귀라고만 지극히 고급한 말로 희롱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우리들 앞에 다가선 이 추상예술, 그의 역사는 수난 그것 뿐이다. 이 세기에 누적된 역사와 숨가쁜 현실 앞에 급속히 대두한, 그리고 안정 세력에 의하여 지탱되고 보장되었던 구상화단의 그 전부를 추방한 이 너무도 급작스러운 변혁을, 혹자는 구상의 장구한 전통에 대해 권태로와 하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다가선 하나의 유행이라고 이 유행에 싫증이 난 때문 추상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말한다. 결코 진리라는 것은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누적된 사실들이 현실의 요구에 의하여 개화기에 개화할 따름이다.

로루쥬 같은 소동으로서 자기를 지탱하는 지극히 야비한 작가는 말하기를 구상의 적은 구상 자체 속에 있고 추상의 적은 추상 자체 속에 있는 것이다.

추상과 구상은 파리에 있어서도 한 때는 서로 헐뜯어 왔다. 추상이니 구상이니 하는 양식에 결코 새로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유파의 회화이건 참다운 그것들은 공간의 질적인 탐색을 위하여 소비된 장구한 역사다.

파리에서도 마찬가지로 화단의 대세는 추상에 있다. 그러나 참된 삶을 지닌 회화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관념에 젖어 있거나 혹은 관념 그것에 사로 잡혀 있는 대단히 고급 양식들이다. 이러한 고급 수작에 싫증이 난다. 오히려 서투른 못난 그대로의 그것을 사랑하게 되고 아쉬워하게 된다.

1945년을 전후해서 훠트리에의 인질에 성이 난 대중에게 계속적으로 밀려 든 듀뷰페, 맛뜌, 아뻴, 볼스 등 또 한 편으로 뽀리아꼬오프, 수라쥬, 슈나이델, 아르퉁그, 그리고 부리에 뒤이어 나온 밀라레스, 이와 함께 스페인에서 쏟아져 나온 따삐에스, 싸우라, 훼이또, 퀴익싸아르트, 남아프리카의 코엣체, 이들은 오늘의 맹장들이다. 파리의 화단은 쎄느 강을 중심으로 좌안과 우안으로 나누어 져있다. 그 사치롭고 고급 거리인 좌안은 대체로 이름난 화가들이 소속된 화랑가이다. 좌안에서 두 개정도의 화랑을 든다면 갸라리·드·프랑스와 갸라리·다니엘·꼴디에이다. 갸라리·드·프랑스에는 아르퉁그, 마네시에, 쌍지에, 타마요, 아레칭스키, 뮤직, 삐니용, 스라쥬, 싸우끼, 벨그망, 니콜송 등 외 수 명이 소속되어있다. 갸라리·다니엘·꼴디에에는 쟝듀뷰페, 맛따, 밀라레스, 그 외 수 명. 이 이외로도 좋은 화랑이 많이 있다.

우안에선 갸라리·스따드라, 갸라리·아루노, 갸라리·루네·두루왕이 눈에 뜨인다. 스따드라는 밋쎌·따삐에가 금년 8월 경까지 영도하는 화랑이며 따삐에스, 싸우라, 코엣체, 쎄르팡 등 그 외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있다. 아루노는 미술 잡지『시메에스』를 발행하는 화랑으로서 밋쎌·라공, 삐엘·레스따니 등 젊은평론가들이 운집해있고 훼이또는 바로 이 화랑을 대표한다. 지금은 백전노장의 훈장만 달고 초라한 뒷골목에 자리 잡은 갸라리·루네·두루왕은 일찍이 세상이 버려버린 칸딘스키의 회고전을 열고, 또 훠뜨리에, 쟝·듀뷰페, 맛뜌, 볼스를 대중들의 분노를 사가며 세상에 내 놓았다. 그는 지금 퀴익싸아르트에 한낱 기대를 걸고 초라한 갸라리의 문을 지켜 보고 있다. 옛날 이야기처럼만 들리는 몽빠르나스의 꺄페에는 이름난 작가들의 출입은 드물다. 그들은 그들의 일에 골몰할 따름이다.

지금도 떠들길 좋아하는 혹은 그럼으로써 자기가 지탱되는 송사리 화가들은 꺄페에 모여 앉아 구상이 어떠니 추상이 어떠니 하고 말씨를 심는다. 이럴 때마다 칸딘스키의 다음의 말이 떠오른다. "뭇 대상으로 회화를 덮어 버리기에는 나는 너무도 회화를 사랑한다. 구상회화는 어차피 문학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에 기대고 있다. 왜냐하면 대상은 그것이 제 아무리 겸양하고 말 없는 것이건 간에 순수회화와 나란히 세우면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 때문이다." 

(사진=필자)


<표기원칙>

- 한글음독본 :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는 독음으로 표기하였으며, 그외 서양어권의 고유명사는 외국어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였다.

- 7호부터 가독성을 향상하기 위해 띄어쓰기, 연도 등을 현대 국어 맞춤법에 따라 교정하고 수기로 수정된 부분은 수정 이후 단어로만 표기한다. 외국어 표기 시 사용되는 낫표「」는 생략, 겹낫표『』는 의미상 사용에 따라 따옴표 ' ' 와 쌍따옴표 " " 로, 그리고 단어 병렬 시 사용되는 · 는 쉼표 , 로 대체했다.

-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인 경우에는 대괄호 [ ]에 의미하는 바를 추정해 병기한다.



[자료 설명]

ARCHIVE FOCUS 7호의 자료는 1961년 센 강을 배경으로 박서보를 담은 사진과 박서보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업 했던 파리 풍경을 담은 습작, 그리고 신문에 기고하기 위해 작성했던 원고 초안이다. 

첫 번째 자료는 파리에서 찍힌 박서보의 여러 사진들이다. 파리 도착 후 일주일경에 노트르담 사원 앞에서 찍은 사진과 한 달째인 2월, 센 강에서 파이프를 물고 찍은 사진, 그리고 일자는 정확하지 않으나 보다 가벼워진 차림새와 잎이 풍성한 강변의 식물들을 보아 봄 즈음 찍힌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에서 박서보는 서로 다른 특색 있는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결정된 후 박서보는 ‘율 브린너’처럼 머리를 삭발하여 파리에서 좋은 활동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작가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인터뷰 했는데, 이 시기에 다양한 모자도 착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사진의 배경이 된 센 강은 박서보가 경험했던 1961년 파리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요소였을 것이다. 7호의 두 번째 자료로 실린 것은 센 강의 풍경을 담은 박서보의 습작이다. 이 그림은 지금의 유유제약(구 유유산업)이 박서보에게 1962년 회사 캘린더에 사용할 그림을 청탁했을 때 한국에 있는 가족의 분유값이나 벌자며 박서보가 그렸던 12점(혹은 6점)의 유화 연작 <파리 풍경>의 습작으로 추정된다. 습작은 작가가 버리라고 했던 것을 작가의 아내가 챙겨 두었다가 작가의 작고 후 자택을 정리하는 중 유족에 의해 발견되어 이 글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발견된 네 점의 습작 중 두 개는 원색으로 코팅 혹은 채색된 캔버스에 그려졌으며 두 개는 종이에 그려졌다. 7호글의 습작은 종이에 그려진 것으로, 중앙부에 센 강으로 추정되는 지형과 그 양쪽에 숲과 나무가 있는 강변 공원으로 추정되는 풍경이 소재이다. 전반적으로 회색조인 화면에 흰색 물감으로 파도 혹은 요트로 추정되는 기물들이 묘사되었으며, 원경에 일렬로 점점이 늘어선 가로등이 흰색 점으로 묘사되어 있어 어두워진 시간대의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월로 연기된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를 준비하면서 박서보는 센 강의 양안을 누비며 파리 화랑들을 탐색했다. 이 과정에서 관람한 전시와 알게 된 작가들에 대해 재불 시기 다양한 신문에 기고했는데, 7호의 마지막 자료는 1961년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파리 화단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정리한 12월의 신문 기고글이다. 센 강의 양안, 서로 다른 지역에 위치한 파리 화랑들의 특징과 그에 소속된 작가들을 정리하면서 박서보는 여전히 추상미술과 구상미술이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미술을 구분하는 것이 뒤쳐진 논쟁이라는 생각을 밝힌다. 박서보에 따르면 파리에서 구상보다 추상의 주된 유행이 눈에 띄기는 하나, 이것은 하나의 사조가 다른 것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 “누적된 사실들이 현실의 요구에 의해” 적당한 시기에 오면 “개화”하는 것이다. 기고글에서 박서보는 관념에 빠져 있기보다는 어떠한 “현실”에 반응하는 예술이 중요하며 참다운 예술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공간의 질적인 탐색”에 있다고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