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8호 1963년 파리비엔날레와 《한국청년화가》전

2024-02-21

ARCHIVE FOCUS⎮8호 1963년 파리비엔날레와 《한국청년화가》전


(1) 1963년 파리비엔날레 브로셔

자료 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2(1962~1964)


(2) 장-자크 레베크, 「비엔날레의 가장자리에서」, 『아르(Arts)』 (1963년 일자미확인) 

자료 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2(1962~1964)


(1) 1963년 파리비엔날레 브로셔, 이일의 참가서문


[원문]


Pour la deuxième participation de la Corée: deux peintres, un sculpteur et un graveur. 

Mais où en est la tradition, tout au moins artistique, du "Pays du matin calme"? Enfermée, étouffée, elle est là, dans une coquille de convention. Heureux ceux qui savent en dégager l'esprit et la sensibilité originels! Dire que nos jeunes artistes aient tous réussi cette tâche serait peut-être aller trop loin; toujours est-il que conscients ou inconscients, ils se nourrissent à ces sources lointaines et profondes. 

Le goût de la profondeur spirituelle, de l'espace démiurgique en suggérant à peine une lumière naissante chez Seo-Bo Park; les lignes ondoyantes, tracées avec grâce, cette grâce naturelle qui se dégage des bras d'une danseuse classique chez Myeung-Ro Youn; tout cela, n'est-ce pas des vertus propres à notre pays? En plus, l'équilibre quasi symétrique, intériorisé chez l'un et toujours rythmique chez l'autre, prédomine dans leurs oeuvres. Cette qualité non moins spécifiquement coréenne, est également cohérente dans les sculptures de Ki-Won Tschae, dont se dégage une finesse rare presque féminine. 

Ceci dit tous sont préoccupés par  une idée plus exigeante, à savoir, libérer notre art de l'esprit conventionnel, lui faire rejoindre les mouvements universels de notre époque en affrontant des recherches esthétiques nouvelles. Par eux est désormais cassée cette coquille délibérément retournée vers le passé. 

D'où cet engouement pour l'art abstrait, à peu près unanime parmi les jeunes. D'où cette inclination pour la matière, alibi de l'existence spirituelle. Tantôt, les formes stagnent comme des résidus d'une âme tourmentée, en contrastant avec le fond longuement travaillé et imbibé d'intérieure (Park) tantôt, le relief joue savamment avec la forme celle-ci restant néanmoins tangible (Youn). Il est à remarquer, par ailleurs, que dans la peinture de Youn, âge de 27 ans et épargné par la tragique guerre de Corée, revit curieusement la réminiscence de la mythologie orientale. 

Mais la conversation de nos jeunes artistes à l'art abstrait n'est rien moins que naturelle, puisque chez nous, comme chez d'autre orientaux, sa virtualité existait depuis toujours. Nous pouvons dire, entre autres et non sans fierté, que nos artistes ont, d'une part, un sens plastique fort développé, cela sans doute grâce à la discipline calligraphique, et d'autre part, un sens particulier de l'espace, ceci certainement grâce à l'amour de la nature, cette nature dans l'esprit le plus pur. Voilà pourquoi, bien que s'assimilant à l'art actuel occidental, le nôtre s'en distingue. Nous y ajoutons: esprit de recueillement, lyrisme sans emphase, inné mais toujours retenu, et enfin cette ténacité silencieuse qui garde en elle les secrets venus du fonds des âges. 


Lie-Yll [Lie Yil]

Critique d'Art à Paris

SECTION ARTS PLASTIQUES 


[번역]

출처: 『조선일보』(1963년 7월 5일)


파리 「비엔날」 참가서문


낡은 인습에서 해방된

새로운 미의 탐구자들


이 글은 오는 9월 1일부터 파리에서 개최되는 「비엔날」의 「캬달록」에 우리 작품의 참가서문인데 필자는 체불 미술평론가인 이일씨이다. 이 글은 지난 6월 14일자로 파리 「비엔날」 본부에 접수시킨 것이다. 이번 제2회 파리 「비엔날」에는 김창열씨가 대표로 참가하는데 출품 작가는 박서보, 윤명로, 최기원, 김봉태 제 씨이다. 【편집자주】


한국의 두 번째 참가를 위해 두 화가 조각가 1명과 역시 1명의 판화가를 보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한국 전통─적어도 그 예술적 전통은 오늘날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 전통은 「인습」이라는 조개 껍질 속에 갇혀 있고 그 속에서 질식하고 있다. 우리 전통의 본연의 정신과 그 본연의 감성을 헤아려 낼 수 있는 사람은 곧 복 받은 자이리라. 우리나라의 젊은 예술가들 모두가 이 과업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지나친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하나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전통이라는 요원하고도 깊은 샘물을 자양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박서보에게는 정신적 깊이에의 기호가 있고 싹트는 광명이 간신히 시사된 조화의 공간에 대한 기호가 있으며, 윤명로에게는 고전 무희의 팔에서 헤어져나오는 자연스러운 우아─그처럼 우아스럽게 다듬어진 선이 있다. 이 모두가 곧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아니겠는가? 그 뿐만 아니라 거의 「심메트리칼」한 균형-박서보에게 있어서는 내면화되고, 윤명로에게 있어서는 항시 「리드미칼」한 이 균형이 그들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이 역시 한국적인 특성은 동시에 최기원의 조각을 일관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거의 여성적인 세련미가 풍겨 나오고 있다.

한편 이들 모두에게는 보다 긴급한 관심사가 존재한다. 즉 우리의 예술을 인습적 정신에서 해방시키고 그것을 새로운 미학적 탐구와 맞서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적 움직임의 대열에 서게 한다는 것이다. 이들 젊은이의 손에 의해 단호하게 과거로 돌아 앉은 조개 껍질은 마침내 깨어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젊은 세대에 거의 한결같은 추상예술에 대한 열중의 소이가 있고 또한 「마띠에르」─정신적 생존의 「알리바이」로서의 이 「마띠에르」에 대한 그들의 경도의 소이가 있다. 혹은 형태가 번민에 찬 영혼의 잔재처럼 응결하며 꾸준히 작업되고 내적 작열에 함빡 젖은 빽과 대조된다. (박서보의 경우) 혹은 「렐리프」가 형태와 교묘하게 어울리며 이 형태는 여전히 촉감에 이야기 해온다. (윤명로의 경우) 특히 6.25의 참변을 겪지 않은 27세의 윤명로의 작품에서 동양전설의 기억이 되살고 있음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들의 추상예술에의 전환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추상예술의 정신은 벌써부터 은밀히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예술가들이 몹시 발달된 조형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특수한 공간 감각을 모두가 지니고 있다는 것을 퍽 자랑스럽게 여기는 바다. 조형 감각은 아마 서예 훈련에서 왔다고 할 수 있겠으며 공간 감각은 분명히 자연-가장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연에 대한 애착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까닭이 있기에 오늘의 한국 예술은 비록 서양 예술을 받아들이고 있을 망정이 예술과 그 유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에게는 명상의 정신이 있고 과장 없는 서정, 타고난 서정이자 항시 잠잠한 서정이 있으며 그리고 태초의 비밀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 없는 꾸준함이 있는 것이다.


(2) 장-자크 레베크, 「비엔날레의 가장자리에서」, 『아르(Arts)』 (1963년 일자미확인)


[원문]


En marge de la Biennale 


•    Complémentaires (Galerie Hélène de Ventadour)

•    Jeune Peintres Coréens (Galerie Lambert)


Soucieuse de révéler le processus créateur de certaines des oeuvres exposées à la Biennale, Hélène de Ventadour a réuni des aquarelles, gouaches et dessins de 14 jeunes peintres qui, selon toute apparence, demeurent attachés au réel, même s'ils le transposent parfois avec une très grande liberté. 

Cette traduction se situe depuis les fouillis végétaux, les volutes baroques d'Iscan jusqu'aux tache claires et joyeuses de Babocsay, en passant par la souplesse et l'onctuosité de Darnaud, les effets de contre-jour d'Aillaud, les tracés graphiques appuyés et francs de Gasquet et Dorny, les mouvements saisis à l'intérieur de la matière par Stempfel, les articulations nerveuse de Clerte. Et ceci pour ne citer que quelques-uns de ces artistes au demeurant tous excellents. 

Complémentaire également de la Biennale, et plus exactement de la section coréenne, l'exposition "Jeunes peintres coréens" présente 4 artistes qui, curieusement, trouvent leur unité dans une forme d'expression fortement influencée par l'Occident. Ce sont, en effet, des terres brûlées à la Tapies, des émulsions de matières à la Burri que nous proposent Chung-Sang Hwa, Kim Chong-Hak, Kwonok-Yun, Park Seo-Bo. San doute ces artistes donnent-ils une idée fausse du climat même dans lequel ils vivent. Où sont les transparences et les fragilités de la lumière du matin calme? 


Jean-Jacques LEVEQUE [Jean-Jacques Lévêque]



[번역]


비엔날레의 가장자리에서 


•    콩플레망테르전 (Galerie Hélène de Ventadour)

•    한국청년화가전 (Galerie Lambert)


 비엔날레에 전시 된 작품 중 몇 가지 창조의 과정을 드러내는데 관심을 기울여 Hélène de Ventadour는 때때로 매우 자유롭게 현실을 전환시키면서도 현실에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14명의 젊은 화가들의 수채화, 과슈화 그리고 드로잉 작품을 모았다. 

이는 Iscan의 식물의 얽힘과 바로크식의 볼류트 장식들부터 Babocsay의 경쾌하고 밝은 얼룩들, Darnaud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지나 Aillaud의 반사광 효과와 자유분방하고 그래픽적인 효과가 강조된 Gasquet와 Dorny, Stempfel에 의해 표현된 질감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 Clerte의 신경의 유기적 결합들까지의 표현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겨우 이 모든 훌륭한 작가들의 이름 가운데에서 몇 가지를 나열한 것일 뿐이다. 

비엔날레의 또 다른 보완으로서, 더 정확하게는 한국 부분의 보완으로서 “한국청년작가”전은 4명의 작가들이 선보여졌는데, 기묘하게도 그들은 강한 서양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표현방식으로 단일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정상화와 김종학, 권옥연과 박서보는 Tapies[Tàpies]식의 불타버린 흙이나, Burri식 질감의 유화들을 선보인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예술가들은 그들이 나고 자란 환경에 대한 거짓된 인식을 주지 않는가. 조용한 아침의 투명성과 빛의 연약성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Jean-Jacque LEVEQUE


<표기원칙>

- 한글음독본 :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는 독음으로 표기하였으며, 그 외 서양서권의 고유명사는 외국어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였다.

- 가독성의 향상을 위해 띄어쓰기, 연도, 문장부호 등을 현대 국어 맞춤법에 따라 교정하고 수기로 수정된 부분은 수정 이후 단어로만 표기한다. 외국어 표기 시 사용되는 낫표「」는 생략, 겹낫표『』는 의미상 사용에 따라 따옴표 ' ' 와 쌍따옴표 " " 로, 그리고 단어 병렬 시 사용되는 · 는 쉼표 , 로 대체했다.

-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인 경우에는 대괄호 [ ] 에 의미하는 바를 추정해 병기한다.



[자료 설명]

ARCHIVE FOCUS 8호에서는 1963년 파리비엔날레를 통해 국제 무대에 진출한 한국현대미술의 면모를 살펴본다. 1963년의 파리 비엔날레는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에 참여했던 박서보에 이어 한국 젊은 화가들이 대거 국제적으로 소개된 괄목한 만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제3회 파리비엔날레》(1963. 9. 28. - 11. 3, 파리시립현대미술관)의 부대행사로 세계문화본부는 갤러리랑베르(Galerie Lambert)에서 《한국청년화가전(Jeunes Peintres Coréens)》(1963. 10. 1. - 11. 3)을 개최했다. 이 두 전시에서 박서보는 새로 작업한 원형질 작품들을 선보였다.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은 브로셔에 <Primordial No.1>, <Primordial No.2>로 기록되었는데, 그 중 전자는 <원형질 No.1-62>로 확인된다. 《제3회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들은 박서보를 포함하여 미술가 윤명로, 조각가 최기원, 판화가 김봉태, 그리고 무대 미술의 최윤호와 김화자이다.

《제3회 파리비엔날레》의 브로셔에 실린 우리나라의 미술평론가 이일의 참가서문과 《한국청년화가》전 을 관람한 프랑스 비평가 장-자크 레베크(Jean-Jacque Leveque)의 『아르(Arts)』 (1963년 일자미확인) 기고글의 관점은 대조적이다. 이일의 한글 원문은 『조선일보』 1963년 7월 5일자에 기재되어 확인할 수 있다. 이일은 참가서문에서 추상 미술이 주된 흐름이었던 파리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전통과 추상의 연결점을 찾아낸다. 이일의 관점에서 한국 작가들의 추상 미술은 “우리의 예술을 인습적 정신에서 해방시키고 그것을 새로운 미학적 탐구와 맞서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적 움직임의 대열에 서게” 하려는 긴급한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 속에 내재한 조형 감각과 공간 감각, 특히 “자연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러하기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반해 프랑스 비평가 장-자크 레베크는 《한국청년화가》전에 참여한 작가들(박서보, 김종학, 정상화, 권옥연)이 “서양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표현방식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이들을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apies, 1923-2012)와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와 같은 앵포르멜 계열의 작가들과 비교한다. 또한 레베크는 한국 작가들이 “나고 자란 환경”의 특징인 “조용한 아침의 투명성과 빛의 연약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