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12호 1963. 4. 3. 이응노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2024-03-26

ARCHIVE FOCUS⎮12호 1963. 4. 3. 이응노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1963. 4. 3. 이응노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

자료출처: 박서보 편지모음집_No.1


박서보군


파리로도 왗다 간제가 발서 맷해덴심싮흐네

그동안 애러가지 골난을격으면서 화도(画途)를 ■추하는 듯 고마운일일세 언제나우리 나라가 올바로 잢히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한 노래가 나올 지 쓸 데 없는 나히서 오는 지 한낱 국민으로써 걱정만 헐 수 없네 그러나 때는 흘느고 또 흘느고 우리 조상덜이 못한 일. 우리덜이 해야 하고 조상의 원한을 푸러주는 우리덜이데야 하며 또─우리 뒤를 따르는 후진을 올바로 있그는 우리가 데야 하것는데 각(各)자가 모든 생존부조리에서 오는 현실인지는 몰나도 조상도 자손도 생각지 안코 조상을 팔고 자손을 팔며 나라도 팔고 제가 팔이는 줄도. 맬망하는 줄도. 모르고 가진 수단 방법으로 오늘만 살고 내일도 모르는 우리덜이 데고 보니 엇지 한심하지 안컷넌가 이것이 우리덜 다음의 미정(未征)을 늣기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리 살믈 우리가 까거먹는 것일세 이것은 우리 화계(画界)뿐이 안이라 우리 사회를 말하는 것일세

하여간 어린 놈과 군(君)의 내외 근강하고 하는 일에 고대(苦帶)가 만할 듯하네 내가 요전에 이일군(君)의게 온 조선일보에서 한국미술해외진(韓國美術海外進)이란 문제를 일고 늣긴 바 잇어 특히 군(君)의게팬지쓰고 싮흔 생각에서 내 생각대로 몃자 쓰는 것일세 파리비엣날이나 또는 어데나 첫재로 생각하는 것은 영광으로 생각하느니 보담 출품해서 엇더한 효과를 가저 오느냐인 문제임을 아러야 하며 또─그런의욕에서 선출방법을 공모(公募)에서 모든 선후배할 것더 엇이 모다 누구니 ~~하는 괄염을 떠나서 작품본위(作品本位)로 선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동양화에서나 조각이나 판화나 할 것 없이 광범위하게 선배덜이나 문교부(文敎部)나 선출위원들을 나바릇 식이도록 하게 애러군대 국제전(展)에도 작품을 냇다가 퇴자마저 진열(陳烈)도 못하는 짓을 하지 말고 괄인물괄당파(括人物括党派)에서 작품본위(作品本位)로 해야 할 것이 안인가

작품선출이나 작가 선종에 고민할 것이 없지 안 한가 선배나 후배나 국제전은 국가 행사이니 국민 전체의 주장이 있서야지 국내에서 하는 행사와는 달이 누구나 좇는 국가 우리나라의서 아모리 유명 무명은 고사하고 국제전의 나가면 누가 누구인 지 알 게 무엇인가 모든 것은 작품이 말하는 것이니 군(君)의 주장으로 난 선후배들를 자조 맞나기에 부탁하네 나는 1월달의 스이스─쇼드뽕1)에 있는 (쇼드뽕)박물관초대로 모르텐센, 마유엘(리베라),2) 나 3인전(展)으로 개최하는데 각각 한 방식 차지해서 도록(圖錄)도 각각 만드럿젓고 23점이 진열뎃쓰며 내 작품 80호(号) 대작(大作) 1매(枚)를 동(同)박물관에서 영구보존품으로 매수했다고 박물관장의 팬지가 왔쓰며 파리 꼼빠레숑3)에, 또─출품뎃고 3월 20일부터 한 달동안 초대장과 갗튼 그르바전(展)에 참가했으며 게속 서독(西獨) 트리에[Trier]의 멋잇는 서독(西獨)국잆박물관에 초대바든 것을 금년(今年)에 개전(個展)을 하게 뎃쓰며 이태리[이탈리아]는 금년(今年) 뉴욕은 명년(明年)의 한다하며 또 멧군대 외국전을 게획하는 모양일세 이달 20일서부터 스이스─노산렐대박물관4) 개최로 7월까지 3개월 개최데는 국제전(展)의 멧 점의 작품이 진열데게 뎃다고 하네 나는 아즉도 말 한마디 모르고 통역하는 사람의 말노만 화랑(畫廊)의 말를 전해 듯는 것이 이런 정도일세 오늘은 대강 이런정도 알이고 고만 글치네


1963년 4월 3일

파리에서 이응노



[현대한글본]


박서보군


파리로도 왔다 간 지가 벌써 몇 해 된 듯 싶으네.

그동안 여러 가지 곤란을 겪으면서 화도(画途)를 ■추하는 듯 고마운 일일세 언제나 우리나라가 올바로 잡히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한 노래가 나올지. 쓸 데 없는 나이에서 오는지 한낱 국민으로서 걱정만 할 수 없네. 그러나 때는 흐르고 또 흐르고 우리 조상들이 못한 일 우리들이 해야 하고 조상의 원한을 풀어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며 또 우리 뒤를 따르는 후진을 올바로 이끄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는데 각자가 모든 생존부조리에서 오는 현실인지는 몰라도 조상도 자손도 생각지 않고 조상을 팔고 자손을 팔며 나라도 팔고 제가 팔리는 줄도, 멸망하는 줄도 모르고 갖은 수단 방법으로 오늘만 살고 내일도 모르는 우리들이 되고 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들 다음의 미정(未征)을 느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우리 삶을 우리가 깎아먹는 것일세. 이것은 화계(画界)뿐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말하는 것일세.

하여간 어린 놈과 군(君)의 내외 건강하고 하는 일에 고대(苦帶)가 많을 듯하네. 내가 요전에 이일 군(君)에게 온 조선일보에서 한국미술 해외진[출]이란 문제를 읽고 느낀 바 있어 특히 군(君)에게 편지 쓰고 싶은 생각에서 내 생각대로 몇 자 쓰는 것일세. 파리비엔날레나 어디나 첫째로 생각하는 것은 영광으로 생각하느니보다 출품해서 어떠한 효과를 가져 오느냐인 문제임을 알아야 하며 또 그런 의욕에서 선출방법을 공모해서 모든 선후배 할 것도 없이 누구니 하는 관념을 떠나서 작품본위(作品本位)로 선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동양화에서나 조각이나 판화나 할 것 없이 광범위하게 선배들이나 문교부(文敎部)나 선출위원들을 내어 버릇 시키도록 하게. 여러 군데 국제전(展)에도 작품을 냈다가 퇴짜 맞아 진열(陳烈)도 못하는 짓을 하지 말고 괄인물괄당파(括人物括党派)해서 작품본위(作品本位)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작품 선출이나 작가 선정에 고민할 것이 없지 않은가. 선배나 후배나 국제전은 국가 행사이니 국민 전체의 주장이 있어야지 국내에서 하는 행사와는 달리 누구나 좇는 국가,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유명·무명은 고사하고 국제전에 나가면 누가 누구인 지 알 게 무엇인가. 모든 것은 작품이 말하는 것이니 군(君)의 주장으로 난[선정되는] 선후배들을 자주 만나기에 부탁하네. 나는 1월달의 스위스 쇼드뽕에 있는 (쇼드뽕)박물관 초대로 모르텐센, 마유엘 (리베라) [마누엘 리베라], 나 3인전(展)으로 개최하는데 각각 한 방씩 차지해서 도록(圖錄)도 각각 만들어졌고 23점이 진열됐으며 내 작품 80호(号) 대작(大作) 1매(枚)를 동(同)박물관에서 영구보존품으로 매수했다고 박물관장의 편지가 왔으며 파리 콤파레종에 또 출품됐고 3월 20일부터 한 달 동안 초대장과 같은 그룹전(展)에 참가했으며 계속 서독(西獨) 트리에[Trier]의 멋잇는 서독(西獨)국립박물관에 초대받은 것을 금년(今年)에 개인전(個展)을 하게 됐으며 이태리[이탈리아]는 금년(今年) 뉴욕은 명년(明年)에 한다 하며 또 몇 군데 외국전을 계획하는 모양일세. 이달 20일서부터 스위스 노산렐대박물관[로잔 캉토날미술관] 개최로 7월까지 3개월 개최되는 국제전(展)에 몇 점의 작품이 진열되게 되었다고 하네. 나는 아직도 말 한 마디 모르고 통역하는 사람의 말로만 화랑(畫廊)의 말을 전해 듣는 것이 이런 정도일세. 오늘은 대강 이런 정도 알리고 그만 그치네.


1963년 4월 3일

파리에서 이응노


<표기원칙>

- 한글음독본 :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는 독음으로 표기하였으며, 그 외 서양어권의 고유명사는 외국어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였다.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한글 옆에 소괄호 ( )로 한문을 병기하고, 수기로 수정된 부분은 수정 이후 단어로만 표기한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장에 사용된 기호는 현대한국어 문법에 맞추어 교정했다. 대표적으로 외국어 표기 시 사용되는 낫표 「」는 생략, 겹낫표 『』는 의미상 사용에 따라 따옴표 ' ' 와 쌍따옴표 " " 로, 그리고 단어 병렬 시 사용되는 · 는 쉼표 , 로 교정했다. 확인할 수 없는 글자는 ■로 표기한다.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와 보다 정확한 명칭과 의미가 추정되는 경우에는 대괄호 [ ] 에 병기하거나 긴 내용의 경우에는 주석을 달았다.

- 현대한글본 : 단어 표현과 맞춤법을 모두 현대한국어로 교정한 본이다.



[자료 설명]

ARCHIVE FOCUS 12호의 자료는 1963년 4월 3일 파리에서 이응노(1904-1989)가 박서보에게 보낸 편지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2기로 입학한 박서보가 고암 이응노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것은 6.25전쟁이 터지기 전 고작 몇 달 간에 불과했다. 또한 이응노는 홍익대학교가 부산으로 임시 이전했을 때 함께 내려가지 않아 부재했고, 홍대가 서울로 복귀한 후에도 학교에 복직하지 않아 박서보는 서양화과로 전과하여 학교를 졸업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반드시 예술적인 영향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박서보는 홍대 졸업 후 이응노가 진행하던 교과서 출판 사업을 도우며 몇 달을 이응노의 거처를 오갔고, 또 이응노가 프랑스에 이주한 후에는 파리에 갈 때마다 종종 방문하기도 하며 꾸준히 교류했다. 박서보가 자신의 예술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점으로 이야기해 온 김일엽 스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진 충남 예산의 수덕여관이 이응노의 동생이 운영하던 곳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1950년대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 작가들의 예술 세계는 동양 화단과 서양 화단을 막론하고 ‘전통’과 ‘현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했다는 점에서 박서보의 전통에 대한 의식과 생각을 이응노와 느슨하게 연계해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지에서 이응노는 파리에서 이일을 통해 전해 받은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을 박서보에게 편지로 전한다. “한국미술해외진(韓國美術海外進)”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는 내용과 편지가 쓰여진 일자를 바탕으로 이응노가 읽은 글은 1963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의 문화면 기사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사에서는 한국 미술가들의 여러 해외 진출 근황과 함께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선정된 작가진에 대해 제기된 최근의 논란을 언급하고 있다.5) 이응노는 국제전 참여 작가를 개인의 명예나 성과를 위해 선정하기보다는 한국 전체를 대표하여 어떠한 성과(“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지를 고민해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판단 기준은 동·서양화, 판화 등 매체 및 "당파"의 구분과 국내에서의 지위를 막론하고 작품 자체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이응노의 생각은 편지 첫 머리의 문장들에서 보여주듯이 1904년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예술가로서 “우리 조상들이 못한 일”을 이어서 해내고 “조상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한국 사회와 미술이 대내외적으로 마주한 여러 과제들에 대해 그가 가졌던 깊은 사회적 책임감에 기반한 것이었다.

박서보 편지모음집에 보관된 편지는 대다수가 윗세대의 작가들과의 대화보다는 동료 작가들과 후배들, 그리고 박서보가 교류하던 동시대 비평가와 미술기관 관련자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러나 편지모음집 첫 번째 권에서 박서보가 이응노에게 받은 몇 개의 편지가 발견되는데 그 중 하나가 이번 호의 자료인 1963년 4월 3일자 편지이다. 편지모음집에 보관된 이응노가 보낸 또 다른 편지는 1960년 12월 박서보가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를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에 작성한 것으로, 박서보 편지모음집의 가장 첫 장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박서보, 「디오니소스 미학의 힘과 역설」, 『32인이 만나본 고암 이응노』(얼과알, 1999), pp. 13-23.

김이순 외 편, 『한국미술 다시보기1: 1950년대-70년대』(현실문화, 2022).



[주석]

1) La Chaux-de-Fonds

2) 리처드 모르텐센(Richard Mortensen, 1910-1993), 마누엘 리베라(Manuel Rivera, 1927-1995)

3) 스위스 로잔 캉토날미술관(Musée cantonal des Beaux-Arts, Lausanne, Swiss)

4) Le Salon Comparaisons 전시

5) 「해외진출(海外進出)하는한국미술(韓國美術)」, 『조선일보』(1963년 3월 12일) 기사 전문은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287719630312m1052&set_date=19630312&page_no=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