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5호 1985. 6. 21. 박서보의 글 「한지와 물성」

2024-01-30

ARCHIVE FOCUS⎮5호 1985. 6. 21. 박서보의 글 「한지와 물성」


“손에 손쉽게 들어오니까 써봤다든가, 아니면 전통적인 매체이니까라는 식의 인습적 혹은 관념적인것이 아니라,

작가의 분명한 의식이 어떤 표현매체를 선택하여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지는 그 위에 가해진 행위를 빨아들여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성의 표현은, 나 (주체)의 표현이 아니라,

역으로 종이(객체)의 물성의 표현이라고하는 주객전도에서 그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는지.”


(1) 박서보, 「[일사일언] 한지와 물성」, 『조선일보』 (1985년 6월 21일).

자료 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19(1984~1985)


(2) 김대수 촬영, 1993년 작업실에서 박서보 사진

자료 출처: 박서보 사진모음집 No.20(1984~2006)


[원문]


(1) 박서보, 「[일사일언] 한지와 물성」, 『조선일보』 (1985년 6월 21일)


[일사일언] 한지와 물성

박서보 <화가·홍익대산업미술대학원장>


그러니까 82년 초겨울의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예술문화진흥회 공동 주최로 서울과 일본에서 순회전을 가진바 있는 「현대 종이의 조형 한국과 일본」 전을 계기로 한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아가면서 커다란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작품들처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일방적으로 종이 위에 펼치고, 종이는 이것들을 받쳐주기 위한 소지로서의 평면의 숙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해석에선 불쌍하게도 종이는 그 존재를 상실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린다는 행위와 물성과의 합일을 얻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나 할까.

손에 손쉽게 들어오니까 써봤다든가, 아니면 전통적인 매체이니까라는 식의 인습적 혹은 관념적인것이아니라, 작가의 분명한 의식이 어떤 표현매체를 선택하여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지와 양지가 서로 판이하게 다른 까닭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해석과 관련이 있다. 인간중심주의를 추진해 온 서양의 발상법이 만들어 낸 양지는 종이 위에 가해진 행위, 구체적으로말하여 수채화 물감이나 먹으로 칠하건 긋건간에 그것들이 강하게 몸을 드러내는데 반해 넓게는 동양의, 좁게는 한지는 그 위에 가해진 행위를 빨아들여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을 적대시해 온 서양과, 되도록이면 자연에 무리를 가하거나 자연 이외의 또 다른 세계를 만들려 하지 않으며,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무명성에 살길 바라는 우리와는 종이 하나만 봐도 그해석과 발상법이 다르다.

종이의 물성의 표현은, 나 (주체)의 표현이 아니라, 역으로 종이(객체)의 물성의 표현이라고하는 주객전도에서 그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는지.


<표기원칙>

(한글음독본)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 한글음독으로만 표기

그 외 서양어권 고유명사: 외국어 원문 그대로 표기

- 띄어쓰기나 오타는 원문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인 경우에는 대괄호 [ ]에 의미하는 바를 추정해 병기한다.



[자료 설명]

새로운 작업 매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박서보는 1982년부터 한지 묘법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한지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당시 국가주의적 민족성을 강조하는 국내외 정치적 환경과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을 순회한 《현대(現代)·종이의 조형(造形): <한국(韓國)과 일본(日本)>전(展)》의 기획과 참여가 있었으나, 한지의 물성이라는 특수한 개념과 한국적 자연관에 바탕한 인간과 물질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 것은 원형질 시기부터 탐구하던 박서보의 고유한 예술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5호의 첫 번째 자료는 박서보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1985년도 6월 21일자 「한지(韓紙)와 물성(物性)」이다. 이 글은 박서보가 1985년 6월 7일부터 6월 28일까지 매주 1회 기고한 [일사일언(一事一言)] 연재글 중 하나로, 박서보는 작품 작업 외에도 신문과 예술문화 잡지에 작품과 예술계에 대한 많은 글들을 기고하여 이를 통해 그의 예술관과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한지와 물성」에서 박서보는 한지를 단순히 전통적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물질적인 특징과 의미를 작품의 근본적인 표현 요소로 활용하는 데 관심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자료는 전기 한지 묘법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실에서의 박서보의 사진이다. 김대수 사진가에 의해 촬영된 흑백 사진에서 박서보는 도안 단계의 한지 묘법 캔버스 앞에서 특수 제작한 바퀴 달린 철판 작업대 위에 양반 자세로 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작업 중인 캔버스는 각종 물감과 안료통, 붓통 등의 도구와 함께 작업대 아래 물감 자국이 가득한 바닥에 놓여 있다. 희끄무레한 바탕색이 칠해진 캔버스 화면에는 배경색으로 드러날 부분이 어두운 색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밀어낼 한지의 방향과 간격이 대략적으로 연필로 스케치되어 있다. 작업 중이던 다른 대형 캔버스의 뒷면은 사진 구조의 절반을 차지하며 작업대 위의 박서보와 작품 외의 공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형 캔버스 패널 뒷면에 붙인 한지로 추정되는 종이에서 박서보의 한문 이름과 숫자가 붙기 전의 명제, ‘묘법 No.’를 관찰할 수 있다.

1993년도 사진 속 작업은 전기의 한지 묘법인 ‘지그재그 한지 묘법’으로, 구성이 정리되고 바탕색과 밀린 부분에 대비되는 색감이 종종 사용되던 시기의 작품이다. 한지 작업을 시작하면서 박서보는 연필 묘법의 연장선에서 젖은 한지 위에 연필 선을 그었는데, 이 과정에서 한지는 연필에 밀려 화면 이 곳 저 곳에서 뭉친 형태를 남기게 된다. 손가락으로 밀어낸 종이죽처럼 보이던 화면은 점차 여러 대각선 방향으로 줄지어 그어진 짧은 직선의 형태로 정리되어 보다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변모된다. 지그재그 한지 묘법은 1997년 이후 화면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직선으로만 구성되는 직선 한지 묘법에 정착하기 전까지 다양하게 실험되었다. 한 곳을 보다 강하게 밀어내 손자국이나 물방울, 혹은 촛불처럼 보이기도 하는 “찢어 떨구는” 요소가 배치되고 배경색뿐만 아니라 화면 전면이 모노크롬 계열에서 벗어난 선명한 원색이나 밝은 색감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글 최윤정

이미지 임한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