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10호 1961. 9. 15. 박서보, 「빠리통신」

2024-03-06

ARCHIVE FOCUS⎮10호 1961. 9. 15. 박서보, 「빠리통신」

박서보, 「빠리통신: 친애하는 박석호 형께, 은사(恩師) 김환기 선생님께」, 『홍대주보』(1961. 9. 15)

자료 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1(1954~1961)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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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글은 화가 박서보씨가 본교 미술학부장 김환기 교수와 박석호 강사에게 보내 온 사신입니다

본교 동문인 박서보씨는 약 8개월 전에 도불하여 현재 「빠리」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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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박석호 형께


참 오랜만입니다 파리에 온 지가 벌써 9개월에 접어들고있습니다 항상 마음과 함께 박형 곁에 제(弟) 서보가 있긴 했읍니다만 아시다시피 사정이란 놈이 무례하도록 만들고 말았읍니다 주지(周知)하시는 일이오니 두루 용서하실 줄 믿습니다

참 그림이라는 것이 힘든 일이군요 죽자사자 매일 같이 그리곤 뚜들겨 부스곤 합니다만 영마음 내키는대로 되지 않는군요 하긴 안이한 편을 택한다면 그처럼 고생고생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추상(抽象)이라는 것 그 얼마나 절실하고 또 힘이 드는 작업인가를 절감합니다 구상(具象)이야 목전(目前)에 사물을 그리면 되겠지만 특히 오늘의 추상 그것은 대상(표현 대상)이 자신이며 이 자신이란 내적 표현이 곧 표현하려는 대상이니까요 제(弟)는 파리에 온 이래 처음으로 조그마한 영적 광명을 최근에야 발견하기 시작했읍니다 이 광명과 암흑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을 가지고 화면에 침묵의 숨결과 격화(激化)한 동맥으로 닥아서고 있읍니다

제(弟)로 하여금 모든 미적 존재를 불신케 만들고 또 자신으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흥분을 갖도록 해 주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추상이 새로운 수단이라고 흥청거리지만… 또 때로는 재능 없는 무지각(無知覺)한 자들의 피신 수단인 줄 아는 이 곡해 당하기 쉬운 추상 앞에 엄숙히 무릎을 꿇은 지 오래지만…

참! 참으로 힘든 행위 그것은 모든 의식의 청산(淸算)만이 가능케 해 주는 군요 박형! 학교 일에 골몰하시겠읍니다 제작은 많이 하셨는지요? 아무쪼록 제작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노력 하십시오 우리다 같이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 앞에 성실과 진실을 바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곧 개학이 되겠군요 여러 동창들에게 앞앞이 안부 전하지 못하오니 두루두루 갖추지 못하는 예(禮)를 박형이 대신하여 주셨으면 감사하겠읍니다 그럼 이것으로 그동안의 무례에 대한 책(責)을 면할까 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1961년 8월 28일

파리에서 제(弟) 서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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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恩師) 김환기 선생님께


벌써 9개월에 접어드는 파리 생활입니다 그렇게 회색진 하늘이 오늘은 파리의 하늘답지 않게 멀리 있습니다 추녀 끝이 춥던 겨울도 마로니에의 풍성한 개화(開花)였던 봄도 지금은 모두 낮서른 음성으로 끼웃거리는 새로운 파리의 주인들의 계절에 안기였읍니다

선생님 무더운 더위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곧 개학이 되겠군요 그런대로 마음은 항상 선생님 곁에 있었읍니다만 늘 사정들은 문안드릴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곤 했습니다 너무나도 벅찬 현실 앞에서 이 조그마한 체구로 그것들과 맞서기에는 참말 죽을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죽자사자 제작에 덤벼보고 있읍니다만 이럴수록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것에 대한 고통은 더해 가곤 했습니다 영적 광명과 그리고 영원에 대해 아직도 숨겨두지 않은 생명으로 잊다으려 합니다만 이 신비에 가리운 또 하나의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그리고 그 영원에 대한 갈증과 축이기에는 가공할 정열과 강인성과 그리고 신념을 쏟아야 했읍니다 진정한 자기 발산의 욕구 이것은 극단의 한계에까지 추구할 것을 요구하며 참말 고독한 시간과 맞서서 무(無)의 참다운 교훈에 충성해야 했읍니다

억압당한 내적 현실의 범신론적인 격발(激潑) 신비한 내향성의 가치 있는 질(質) 그것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게 합니다 어느 시대 어떠한 미적 진화에서도 그랬듯이 확실히 회화는 내적 정신 생활의 표현이요 또 회화는 어떠한 의미에서나 공간의 질적 탐색을 위한 오랜 진화기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정신 공간의 참다운 발견을 위해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그 인생을 걸고 도박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중세기로부터 오늘에 잊닿기 까지 가치 있는 질(質)을 소유한 뭇 대가들이 그랬읍니다 공간은 우리가 표현코자 하는 대상이자 모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추상(抽象)을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에 덤벼드는 것일까를 파리의 생활에서 뼈 마디마디에 절감했읍니다

구상(具象)이라면 그들의 대상이 외적 조건에 있지만 추상(抽象)은 내적 조건에서 출발하며 또 표현코자하는 대상이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실존에 대한 엄숙한 그리고 진정한 증언이기 때문에 자각 없이 추상(抽象)으로 이주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를 깨닫습니다 추상(抽象)이 결코 한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존재를 주장하기 위한 단독자(單獨者)의 행위인 것 같습니다 문생(門生)은 요즈음 물질에 대한 묘한 매력을 가지고 물질 공간의 확대를 위해 질(質)을 건 도박을 하고 있읍니다 아주 우주적인 분위기를 갖기에 전력합니다만 쉽사리 이루어 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항상 대립하고 있는 광명과 암흑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을 가지고 덤벼 봅니다만 그리 쉽사리 그 광명이 자기의 것이 되지를 않아 무척 고통을 느끼고 있읍니다 어느 영혼의 계시와도 같은 물질의 면적(面積) 이 매혹은 항상처럼 문생(門生)을 놓아 주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일 년만 더 이 곳에서 공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에 못 견디면서도 11월엔 귀국해야 할 운명을 자각하곤 오늘의 이 파리에서의 실험기를 귀국해서 꾸준히 닦아 자기 완성의 조용한 나날을 보낼까 합니다 참말 그 동안의 파리의 생활은 죽음과의 투쟁이오 또 광명을 쟁취하기 위한 실험기인 것 같습니다

여기 문생(門生)이 그 동안 그림 그리며 느낀 것들을 두서 없이 적어 보았읍니다 그럼 선생님 내내 존체금안(尊體錦安)하옵시길 빌며 이 것으로 책(責)을 면할까 하옵니다 여러 선생님들께 문안 드려주십시오


1961·8·28

서보 아룀


<표기원칙>

- 한글음독본 :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는 독음으로 표기하였으며, 그 외 서양서권의 고유명사는 외국어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였다.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한글 옆에 소괄호 ( )로 한문을 병기한다.

- 가독성의 향상을 위해 띄어쓰기, 연도, 문장부호 등을 현대 국어 맞춤법에 따라 교정하고 수기로 수정된 부분은 수정 이후 단어로만 표기한다. 외국어 표기 시 사용되는 낫표 「」는 생략, 겹낫표 『』는 의미상 사용에 따라 따옴표 ' ' 와 쌍따옴표 " " 로, 그리고 단어 병렬 시 사용되는 · 는 쉼표 , 로 대체했다.

-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인 경우와 보다 정확한 지칭 대상을 아는 경우에는 대괄호 [ ] 에 의미하는 바를 추정해 병기한다.



[자료 설명]

ARCHIVE FOCUS 3월의 주제는 홍익대학교와 박서보다. 10호에서는 홍익대학교 졸업생으로서 편지글의 형식으로 파리에서의 소식을 전한 박서보의 『홍대주보(弘大週報)』(현 『홍대신문』) 기고글을 다룬다.

1961년의 9월 15일 홍익대의 교내 주간 신문인 『홍대주보』에 박서보가 파리에서 보낸 편지 두 편이 수록되었다. 지면에는 에펠탑과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묘사한 삽화를 중심에 두고 왼쪽에는 박서보가 홍대 선배인 박석호에게 쓴 편지와 오른쪽에는 스승인 김환기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었다. 각 편지의 상단에는 편지를 받는 이를 적은 박서보의 친필 글씨가 인쇄되었다.

박석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1기 졸업생이자 홍대에 출강하는 시간 강사였으며 김환기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박서보가 가르침을 받은 교수였다. 박석호와 김환기는 모두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작업을 했는데, 특히 김환기는 초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박서보가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편지가 쓰여진 1961년은 박서보가 홍대를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한 지 7년 째 해인데, 이 시기에도 박서보가 홍대과 꾸준히 교류하며 그 곳에 출강하는 강사진 및 교수진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박서보는 1962년부터 홍익대학교에 시간 강사로 출강하며 꾸준히 학생을 배출했고, 1966년에서 1970년 사이 교수 방식을 둘러싼 교수진 간의 갈등으로 잠시 학교를 떠나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3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서 국내 미술계에서 추상 미술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박서보는 「빠리통신」에서 새 학기 개강을 맞이하며 홍대 선배인 박석호와 은사인 김환기에게 전하는 소식의 형태로 파리 생활의 소회와 예술가로서 당시의 고민을 정리하고 있다. 편지글에서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 참가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머물면서 박서보가 몰두했던 구상과 추상, 그리고 그것을 넘어 선 회화의 본질과 “공간의 질적 탐색”이라는 주제를 엿볼 수 있다. 박서보는 파리에서의 시간을 일종의 “실험기”로 묘사하며, 추상 회화의 본질적인 요소들인 공간, 화면, 미적 깊이, 그리고 인간의 내적 정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겪는 고통을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