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ARCHIVE FOCUS⎮13호 1981년 가을 박서보, 「단상의 노우트」

2024-04-03

ARCHIVE FOCUS⎮13호 1981년 가을 박서보, 「단상의 노우트」


(1) 박서보, 「단상(斷想)의 노우트」, 『화랑』(1981년 가을호), pp. 58-61

자료출처: 박서보 증빙자료집 No.14


(2) 박서보, <묘법 No.3-74-77>, 1977, 104x162cm, 캔버스에 유채와 연필, 개인 소장



얼마 전에 인사동에 있는 어느 화랑에 들른 적이 있다.

조그마한 화랑 한쪽엔 누구라 하면 잘 알 만한 두 조각가의 작품과 벽에는 젊은 화가들의 현대회화가 걸려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쪽 방엔 두툼한 소나무 암반(떡판)을 두 개의 소나무 받침대로 받쳐 놓았고 다른 쪽엔 소나무 함지를 무표정하게 벽에 기대 세워 놓았다.

우연히 들러 본 이 화랑에서 나는 평소에 늘 생각해 왔던 것과 아주 흡사한 상황과 만났던 것이다.

그것은 현대성과 고전과의 대비에서 어느 것이 우월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의 본도(本道)라고나 할까 아주 상반된 세계관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말이다.

두 조각가나 젊은 화가의 작품들에선 한결같이 개성을 앞세워 어떤 세계를 꿈꾸며 이념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그것은 근대주의 조형방법론에 의존한 것들이었다고 한다면 민속품에선 표현을 단념했다고나 할까. 어떤 세계를 만들지도 드러내려 하지도 않음으로써 오히려 놓여진 장소와의 관계에서 구조성을 띠고 나타난다.

과연 예술은 어떤 세계를 표현하는 것일까. 이념을 드러내는 일이 표현에 충실하는 짓이란 말인가. 이와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긴긴 세월 많은 사람들이 구구한 주장들을 해왔고 나 또한 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날 개성을 앞세워 나를 강하게 드러내는 일이 최선의 표현 행위라고 확신하던 때도 있었으나 차츰 자연의 섭리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면서 ‘나’를 비워 버리는 일이 훨씬 ‘나’에 충실하는 일이라는 사실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되새기자면 드러내지 않는 표현이 최선의 표현이란 말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림 속에서 이러한 삶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의문에 대해 나는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상태에 놓여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말해 왔다.

이러한 정신 상황을 노닐 때 비로소 해방감을 맛보며 따라서 ‘나’는 ‘나’를 떠나게 되고 또한 가꾸어지지 않은 참 모습의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삶을 맛보기 위해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따라서 옛 선비가 세태(世態)에 더럽혀진 심신을 맑게 거르는 수단으로, 아니면 뭇 번뇌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붓글씨를, 혹은 사군자(四君子)를 쓰거나 치는 끝없는 반복속에서 ‘나’를 벗어나 심기(心氣)를 바로 잡고 수신(修身)하던 그런 삶에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하여 산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맑고 투명하게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삶을 원하는 나는 개성을 내세우며 어떤 세계를 만들려는 행위를 단념함으로써 ‘나’를 드러내는 뭇 예술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마당(場)에 서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나의 그림에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가 않다. 오직 행위의 흔적만이 숨 쉬며 존재할 뿐이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상태란 이미지나 표상에 매달려 허위적거리는 그런 예술이 행위를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행위 그 자체에 전체를 걸고 살고자 하며 행위가 곧 목적이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뭇 예술들이 이미지 표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런 의미에선 무목적성(無目的性)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가리켜 무위순수행위(無爲純粹行爲)라 일컬어 왔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구상(具象)이건 추상(抽象)이건)이 있어 그 대상에 접근해 간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상 싶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무대상(無對象)(구상적인 표현대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없다는 뜻으로 쓴다)이기 때문에 표현한다기 보다는, 굳이 말로 나타낸다면 행위 속에 산다는 말이 적합할 것이다.

나는 끝없는 행위의 반복속에서 ‘나’의 해체를 단행(斷行)한다. 살을 여미는 듯한 아픔, 그것은 극기(克己)의 시련이다. 행위는 반복구조를 타고 때로는 호흡을 죽이며 절제된 혹은 금욕적인 세계를, 때로는 자유분방한 세계를 노닌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경지에 있을 때 나는 텅텅 비워지고 비로소 행위는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나는 연필과 흰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엄격한 의미에선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이 나에겐 적합하지 않지만) 연필과 흰색은 그림을 그리는 재료가 아니라 ‘나’를 허무는 도구이자 극기(克己)의 도구인 것이다.

내가 늘 쓰고 있는 흰색은 다른 색에 비해 가장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튜브에서 짜 낸 그것은 순도 높은 흰색으로 희다는 개념을 드러낸다. 이것을 중성화(中性化)하기 위해 몇 가지 색을 섞어서 생마포 위를 덮는다.

흔히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폭에 밑칠을 한다고 하지만 내 경우엔 밑칠이 아니라 ‘마당(場)’을 펼치는 행위의 일단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흰색이 덮혀진 부분과 덮혀지지 않은 생마포와의 관계에서 마포를 최소한으로 남겼을 때 마포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보다 훨씬 존재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마당’에, ‘나’를 텅텅 비우기 위한 행위가 반복되는 것이고 보면 행위는 궁극적으로 ‘나’를 비워 놓기 위한 프로세스로 봐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의미성을 띠지 않은 행위의 흔적으로서의 선(線). 그렇기 때문에 선 자체가 의미성을 지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선이 생성과 소멸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인간의 지배영역으로 부터 벗어나 노니는 여운의 세계처럼 ‘나’를 벗어나 노닐 때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의미화하려는 사람들이나 혹은 예술을 의미표현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나의 경우는 무의미한 짓거리로밖에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 자체의 현실 속에서 순수성에 살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의미를 되씹는다면 의미화하는 일이 실제가 아닌 환상에 매달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단념하고 자연을 살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표기원칙>

- 한글음독본 : 한문표기와 한자어권 고유명사는 독음으로 표기하였으며, 그 외 서양어권의 고유명사는 외국어 원문을 그대로 표기하였다.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한글 옆에 소괄호 ( )로 한문을 병기하고, 수기로 수정된 부분은 수정 이후 단어로만 표기한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장에 사용된 기호는 현대한국어 문법에 맞추어 교정했다. 대표적으로 외국어 표기 시 사용되는 낫표 「」는 생략, 겹낫표 『』는 의미상 사용에 따라 따옴표 ' ' 와 쌍따옴표 " " 로, 그리고 단어 병렬 시 사용되는 · 는 쉼표 , 로 교정했다. 확인할 수 없는 글자는 ■로 표기한다. 틀린 정보(인명, 전시명 등)와 보다 정확한 명칭이 추정되는 경우에는 대괄호 [ ] 에 병기하거나 긴 내용의 경우에는 주석을 달았다.



[자료 설명]


4월 ARCHIVE FOCUS의 주제는 자연과 박서보이다. 13호의 자료는 박서보가 한지 묘법을 시작하기 전인 1981년 가을, 미술 잡지 『화랑』에 기고한 글로, 연필 묘법과 관련하여 70년대부터 박서보가 다듬어 온 자연 그리고 자연의 색에 대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1)

1981년 가을호 33권 『화랑』에 담긴 박서보의 글은 ‘단상’이라 이름 붙였으나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연필 묘법의 주제와 작업 방식에 대한 생각을 다루고 있다. 박서보는 우연히 방문한 화랑에 진열된 미술 작품들에서 미술의 두 가지 본도(本道), 혹은 관점을 확인한다. 젊은 작가들의 조각 및 회화 작품들이 “근대주의 조형방법론”에 기반하여 자신의 개성으로 만들어 낸 세계를 표현하려 한다면, 민속품은 “표현을 단념한”듯 “어떤 세계를 만들지도 드러내려 하지도 않음으로써 오히려 놓여진 장소와의 관계에서 구조성을” 띄는 미술이다. 두 미술의 방식은 동등하게 의미가 있고 박서보 또한 양자 모두를 탐구해 왔지만 그는 후자의 방식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소회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민속품이 그러하듯 “‘나’를 비워 버리는 일이 훨씬 ‘나’에 충실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 문장에서 등장하는 ‘나’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진다. 박서보가 비워 내고 싶은 ‘나(1)’는 화랑에서 본 근대 서양 예술가의 자아이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이념을 실현하며 “뭇 번뇌”로 가득한 ‘나(1)’를 해체하여 떠나야만 비로소 “‘나(2)’에 충실”해질 수 있다. 이 때 박서보가 지향하는 자아는 “인간의 지배를 벗어”난 “가꾸어지지 않은 참모습의 ‘나(2)’”이다. 민속품을 만든 장인과 붓글씨를 쓰고 사군자를 치며 “수신(修身)”하는 옛 선비와의 비교에서 도출할 수 있는 보다 참다운 자아인 ‘나(2)’는 근대 서양 예술가들의 것과는 구분되는 동양적 개인 정체성이며, 특히 전통적 자연관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나(2)’는 목적이 없이(“무목적성”) 반복하는 행위에 “무념무상”으로 집중하는 “수신(修身)”의 과정에서 도달할 수 있으며, 한없이 “금욕적”이기도 하면서도 자유로운 “해방”의 상태에서 자연을 산다.

박서보에게 연필 묘법의 연필 선과 흰색은 이러한 ‘나(2)’에 이르기 위한 도구이다. 흰색은 물감 튜브에서 갓 짜낸 “순도 높은” 흰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색을 섞어 “중성화”되어야 한다.2) 선 또한 어떠한 의미를 표현하기 보다는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롭게 “여운의 세계”에서 “‘나’를 노니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박서보는 설명한다.

14호에 함께 게시된 <묘법 No.3-74-77>(당시 잡지에는 <묘법 34-77>으로 수록되었다)의 이미지에서 박서보가 묘사하는 마당이 되는 생마포의 질감,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중성화”된 흰색, 그리고 자유롭게 ‘나’를 노니는 선과 같은 연필 묘법의 특징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연필 묘법 이후로도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과 예민한 인식은 박서보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가 된다.


[주석]

1) 계간 『화랑』은 1970년 개관한 현대화랑(현재는 갤러리현대)에서 발간한 미술 전문 잡지이다. 1973년부터 발행되어 1988년 가을부터는 『현대미술』이라는 제목으로 1992년까지 출간되었다. 19x13cm의 작은 문고판과 같은 판형이 특징인 이 미술 잡지는 평론가 오광수를 중심으로 하여 박래경, 이홍우, 이구열, 허영환 등의 미술 전문가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여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 부족했던 한국 미술가들의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고 담론을 공론화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MMCA Research Lab 미술용어 “화랑” https://www.mmcaresearch.kr/terms/view.do?fid=1444

2) 이렇게 “중성화”된 흰색을 박서보는 희끄무레한 색이라고 이름 붙였다. 중성성 혹은 중성 구조라는 개념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전반 국내 미술 비평에서 등장하는 미학 개념으로 주목을 요한다. 이 개념은 14호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어질 예정이다.